집사의 자격과 특권
어떤 인터넷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었다. 본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젊은 나이에 뭔가 멋진 걸 이룬 이야기였던 것 같다. 거기에 누가 이렇게 적었다.
나랑 동갑이네, 부럽다.
나는 고양이 똥이나 치우는데...
나는 처음에 빵 터졌다가, 곧 우리 집 고양이들 화장실이 생각나서 얼른 삽을 들고 똥을 치우러 갔다. 발굴을 기다리는 건장한 맛동산과 감자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왔다. 하마터면 타이밍을 놓칠 뻔했네. 덩어리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삽질을 하며 잔모래를 털어냈다. 이렇게 모래 속에 지저분하게 흩어지지 않은 대소변을 건져내고 있으면 온 세상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라는 건 환상이고. 일단 냄새부터 치고 들어온다. 한 손에 바구니, 다른 손엔 삽을 들고 있으니 똥을 치우는 동안 코를 막을 수도 없다. 고양이의 내면과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랄까. 게다가 아무리 응고력이 좋다는 모래를 써 보아도 아이들이 여러 마리면 부서지는 소변 덩어리도 반드시 생긴다. 그러면 오염되기가 쉬우니 또 그 부스러기를 한 점 한 점 골라내야만 한다. 한참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삽질을 해본 집사라면 이 처량함에 공감이 갈 만하다. 그걸 옆에서 구경하는 고영님 눈빛의 얄미움도.
아직 고양이 사무실이 꾸려진 지 오래되지 않았던 때에 이런 날도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우리 집 고양이들 똥을 치우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청소를 하면서 당연히 삽을 들고 화장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진의 집으로 갔는데 아직 화장실 청소 전이라 역시나 대소변을 치웠다. 그리고 진과 함께 사무실로 가서 일을 보고 마감을 하며 화장실을 치우고, 우리 집에 들렀다가 화장실을 치우고, 진의 집에 가서 화장실을 치웠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와, 하루종일 고양이 똥만 치우네!”
문자 그대로였다. 나는 마치 똥 치우는 기계가 된 것처럼 장소를 바꿔가며 내내 모래삽을 들고 다녔다. 그때는 팔자의 기구함을 탓한 말이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면 가소롭다. 그건 단지 매일 해야 할 일의 시작일 뿐이었다. 세 군데로 흩어져 있는 돌봄 환경을 떠돌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내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곧 화장실을 치운다는 뜻이다.
실제로 화장실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일단 배변 상태를 통해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무른 변이 있거나 소변량이 너무 적지 않은지, 혹은 혈뇨나 혈변이 있지는 않은지 매일 확인해야 한다. 화장실 위생 상태도 잘 유지해야 한다. 눈곱이 생기는 것부터 해서 각종 감염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화장실이 더럽다고 생각한 고양이의 배변 실수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고양이 화장실 숫자는 고양이 수 ‘더하기 1’이라는 게 거의 정설이 되었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 사무실 환경에서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가 화장실 위를 걸어 다녀야 할 거다. 안타깝게도, 좋다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사는 모양에 다 실현시킬 수는 없다. 대신 쉽게 오염되지 않도록, 조금 비싸더라도 응고력이 좋은 모래를 사용하고 있다.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자주 청소를 해주고, 최소 세 달에 한 번은 모래 전체갈이를 한다. 이 규모에서는 전체갈이가 또 만만치 않은 일이라 우리는 그때마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드러눕는다.
그런데 적다 보니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실은 우리 집 화장실 전체갈이를 미뤄뒀던 참이다. 주기가 이미 지났고, 화장실 바닥에 소변자국이 남은 걸 알았지만 여태 실눈을 뜨고 외면해 왔다. 여기서 고양이 화장실이 어쩌고 떠들면서 정작 눈앞의 일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 되었다. 글을 멈추고 전체갈이부터 하고 와야겠다. 여하튼 글쓰기라는 건 사람을 참 불편하게 하는 작업이다.
깨끗해진 화장실에 새 모래를 채워주자마자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하다. 고양이들이 청결을 저렇게나 예민하게 감지한다. 처음 고양이를 키울 때는 밥 먹는 거, 걸어가는 거 하나하나가 구경하기 재미있었는데, 나는 특히나 똥 싸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미친 사람처럼 그런 장면만 사진으로 모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고양이들은 -경험상 주로 아기들인데- 다른 고양이가 배변을 보고 나면 꼭 들어가서 몇 번이고 그걸 다시 덮어준다. 그걸 안 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아주 야무지고 바지런하게. 정말이지 고양이들이란.
집사로서 고양이들에게 무해할 수 있으려면 공부하고 익혀가야 할 것들이 많다. 고양이는 우리가 알기 힘든 예민한 세상 속에 사니까. 그러니 기본이 되는 ‘똥/물/밥’부터 잘 챙겨가면서 고양이로부터 하나씩 배워야 한다. 고양이는 그런 집사를 잘 지켜보다가 우리가 잘하는 것 같으면 오묘한 고양이 뷰를 선물처럼 조금씩 선사해 줄 것이다. 그게 고양이 똥 치우는 사람의 특권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아마 그 댓글을 적었던 사람도 곧바로 자기 고양이를 한 번 만지러 갔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