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쿠마와 함께
나는 주먹 만한 공기 튜브를 바라보고 있다. 쪼그라들어 있는 저 튜브에 공기가 들어차면 계란처럼 둥근 모양이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공기가 차올라서는 안 된다. 저렇게 쪼그라든 채로 있어야만 한다. 튜브 옆에서는 동그란 두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몸뚱이도 쪼그라들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부풀어 올라서 날아다녀야지. 그런 말을 눈빛으로 마주 보내며 나는 쿠마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
쿠마는 우리 사무실에 잠시 있다 금방 입양을 간 친구다. 시보호소에 있던 유기묘였는데 성격이 소심해서 입양 문의도 그다지 없었다. 마취 없이는 검진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운 면도 있었다. 손을 안 타면 어딘가 아프게 되었을 때 케어가 힘드니 마땅한 입양처를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었다. 그럼에도 입양자 분이 애정과 의지를 갖고 입양을 결정해 주셔서 우리는 퍽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쿠마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호자 분 쪽 병원들로부터 응급이라며 두 번이나 진료 거부를 받고, 결국 우리 쪽 큰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검진을 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아이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지만 원인을 알기가 힘들었다. 복막염 등을 의심했지만 분명하지 않았고 그런 채로 복수는 계속 차올랐다. 위급 상황을 몇 차례 넘기면서 복수가 아니라 흉수라는 걸 알게 됐고, CT 촬영을 통해 기흉과 혈전을 발견했다. 쿠마는 흉관을 삽입했다.
우리 쪽 병원으로 온 이후 아이 보호자 역할은 사실상 진이 하고 있었다. 이제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입양자 분은 결정을 내리셔야 한다고 진은 말했다. 고심 끝에 돌아온 대답은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가족을 찾기가 어려웠던 친구를 마음을 내어 거두기로 한 것이었지만, 한 달 만에 너무 크게 발병한 이 상황은 당혹스러웠을 만하다. 치료가 가능한지도 미지수인데 그 험난한 과정을 다 감당하기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벽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럼 어쩌지.
선택과 고민의 여지도 없이, 진이 쿠마를 떠안게 되었다. 진은 2차 병원을 포함해서 여러 수의사 선생님에게 아이 상태를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며 치료 방법을 수소문했다. 어떻든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방법이 있는지라도 알아야 뭐라도 해볼 테니까.
알아본 바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수술을 해서 문제가 있는 폐를 절제하고 회복을 기대하는 것이 하나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수술 자체도 어렵거니와 예후가 매우 안 좋을 수 있다며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다른 하나는 흉수를 계속해서 뽑아내가며 지켜보는 것이다. 아이의 다른 컨디션이 처음만큼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꾸준히 관찰하면서 자가 회복을 기대해 보는 방안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본들 어느 쪽도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진은 매일 병원으로 면회를 가서 쿠마를 지켜보다 왔다. 나는 모든 책임을 지는 일이 진에게로만 스며드는 상황을, 그걸 받아내는 진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왜 네가 다 하니. 왜 우리만 다 하니.
마음의 소리가 커져만 갔다. 소인배가 되어갔다.
하루하루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쿠마의 가슴속에 자리한 위태로운 폭탄. 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하던 진은 어렵게 모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수년간 고양이들 돌봄을 해오는 동안 재개발지역 이후로 두 번째로 꺼내보는 방법이었다. "그래 그거라도 해봐야지, 방법이 없으니." 옆에서 그런 소리만 하고 있던 나는 막상 모금이 시작된 후 크게 놀랐다. 부끄럽지만, 감사보다도 더 크게 다가온 놀라움이었다. 진의 계정을 통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이런 실천을 하는구나. 나라면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알았다. 나는 소인배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소인배다. 원래가 소인배였다. 나 하나밖에 모르는 소인배.
내가 사는 세상은 ‘기을 쓰고 나 하나만 바라보는 세상’이다. 그 세상 밖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약한 존재를 돕는가 보다. 손을 마주 잡고 품을 안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누군가를 구해왔는가 보다.
언젠가 늦은 밤, 술에 취해서 주차방지턱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했을 때 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사람을 살펴보고 신고를 했어야지.” 나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까 봐, 괜한 일에 역일까 봐 가까이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살펴보고 돕는구나. 그런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꽤 괜찮아지겠구나. 그리고, 그러면, 쿠마도, 괜찮아지겠구나.
쿠마는 폐엽절제수술을 받았다. 흉막염이 심각했고, 이미 많이 상한 왼쪽 폐는 제거했다. 그 후에도 공기가 새서 처음과 반대쪽에서 찢어진 부분이 또 발견되어 처치했다. 큰 수술이었다.
퇴원하고 사무실에 온 쿠마는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진이 시간마다 약을 먹이고 사무실 식구들이 돌아가며 거의 한 시간마다 흉관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공기가 새어 나와 튜브를 부풀리지 않는지, 흉수가 이상하게 빠져나오지 않는지. 쳐다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친구를 상대로 그렇게 케어를 이어가고 있다. 수술 직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공기가 빠져나왔지만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덜해지는 중이다. 흉수도 큰 이상이 없다. 이렇게 공기 빠짐이 좀 더 장기간 유지되면 흉관을 제거해도 된다고 한다.
가슴에 안은 폭탄에 더해 밖으로 삐져 나온 기다란 혹까지 달고 있는 쿠마를 보면, 저거라도 떼어줬으면 싶다.저 친구가 나았으면 좋겠다. 눈빛이 또렷하고 밥도 잘 먹는 걸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아직 완전히 망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약하고 작은 존재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내게도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소인배의 세상을 벗어나 서로 돕고 누군가를 구해가는 세상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소인배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
그러니 쿠마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