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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Sep 12. 2024

아름다운 광경의 그림자에서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야기 5

훌쩍 다가온 한가위가 무색하게도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긴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진과 혜진 씨는 아침저녁으로 재개발지역을 다니며 이 계절을 보냈다. 산길을 타며 밥자리를 이동하는 동안 살갗은 그을렸고, 그 위로 산모기들이 많이도 앉았다. 그렇게 당찬 사람들이 이 몇 달 사이에만 두 번씩 크게 앓아눕기도 했다. 그럼에도 산길을 밟는 두 얼굴은 밝았다. 둘만큼이나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고양이들이 반겨주고, 또 따라와 주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거의. 그렇게 힘을 낼 무렵, 공사 일정이 당겨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산등성이가 둘러싼 가운데 푸근한 오솔길과 정갈한 밭이 조화로운 동네였다, 이 마을도.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거짓말로 들릴 만큼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나무는 잘려나가고, 산은 파헤쳐졌다. 사람은 떠나고, 집은 부서졌다. 공간에 담긴 기억마저 지워버릴 기세로 동네는 빠르게 폐허가 되어갔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대부분의 밥자리는 공사지역을 벗어나 산길의 귀퉁이로 옮겨졌고, 아이들도 그 근방에 잘 머물러주는 편이다. 문제는 ‘밤이네’였다.


처음부터 밤이네는 가장 험난한 코스였다. 이주해야 하는 거리도 가장 길었고, 가고자 하는 지점도 해가 덜 들고 수목이 우거진 환경이었다. 공사의 소란을 벗어나 가까스로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얼마나 안전이 보장될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시공사로부터 밤이네 아이들 구역의 철거가 추석 직후 진행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예정에 없던 수로 공사가 추가되면서 갑작스레 공사 일정이 바뀌었다는 귀띔이었다. 장마까지 만나 안 그래도 이주가 늦어졌던 터였는데, 우리는 한순간에 내몰린 신세가 되었다.


그것이 오랜 기간 안고 있던 고민에 방점이 되었다. 우리는 밤이네 아이들 전원 구조를 결정했다. 구조를 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다면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밤이네가 특히 손과 마음이 많이 쓰였던 구역인걸 감안하면, 아마 바깥에서의 일은 절반 정도 줄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보호 중인 아이들, 그리고 생명 하나를 새로 구조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구조 결정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응원과 도움이 필요했다. 진은 계정을 통해 아이들의 임보처와 입양처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한편 순차적인 구조 계획을 잡았다.



먼저 몸이 안 좋고 무리에서 겉도는 경향이 있던 초코와 가을이를 시작으로, 생이와 삼순이가 차례로 구조되었다. 아이들이 폐가 안에 주로 머물고 있어서 만나기 쉬운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약속을 하고 기다려주는 노릇도 아니니 긴장은 늦출 수 없었다.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에서 벌목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대체로 마찬가지였지만 마지막 남은 다섯 마리는 혈연 관계도 분명하고 사이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사람도 좋아하고 정말 순한 아이들. 밤이. 생강이. 북이. 망고. 동이. 이 친구들은 한 번에 구조 일정을 잡았다. 고맙게도 여기까지 순조롭게 모든 구조가 진행되었다. 동이만 빼고.


동이는 무리 중에 유독 겁이 많은 편이었다. 구조 초기에 건물 문을 닫는 데에 놀랐던지 지하 창문을 통해 쌩 하니 도망을 쳐버렸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아 더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진과 혜진 씨가 밤낮으로 들러가며 동이를 살폈다. 이미 경계가 생겼을 테니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했다. 그런데 동이도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포획틀 안에 들어와서도 문이 닫히는 발판 바로 앞까지만 가서 고개를 내밀어 간식만 날름 먹고 나가는 솜씨라니. 캣닢 뿌리기는 물론, 간식도 츄르, 습식, 트릿 종류별로 바꿔가며 시도했고, 위치도 여기저기로 옮겨보았다. 재시도, 재시도, 재시도.


진의 이런 구조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옆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랬고, 혜진 씨도 그랬고, 많은 제보자, 구조자들이 그랬다.


“아, 안 될 거 같아요.”


거기에 응하는 진도, 항상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잠시만요, 5분만요. 될 거 같아요.”


그리고, 된다.


이미 포획틀에 경계가 생긴 친구와 줄다리기하는 지난한 과정은 가슴이 무거워지고 넋이 나가기 십상이다. 진이 어떻게 그런 끈기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은 늘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되뇌며 아이를 기다린다. 당연히 모든 구조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끈질기게 한번 더 뻗어보는 진의 손에 멀게만 보였던 고양이들이 그렇게 닿았다. 동이도 끝내 마지막 발을 내디뎌 주었다.



긴장했던 구조가 마무리되고, 혜진 씨와 나는 안도감과 해방감에 함께 큰 숨을 놓았다. 다행이다, 끝났다. 그렇게 자축하면서. 그런데 마지막 동이를 차에 태우면서도 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마당과 너른 논밭, 그리고 개울가와 숲. “아, 이제 그 아름다운 광경을 못 보는구나.” 온몸에 힘을 줘가며 구조에 목을 매었지만, 실은 진은 아이들을 여기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살던 모습 그대로, 아이들이 계속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고양이가 사람 곁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이 잘 챙겨주었다. 먹을 것, 놀 것, 눈비 피할 것들이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떠났다. 밤이네를 유독 챙겨주던 분은 꽤 최근까지도 아이들 밥을 챙겨주러 오셨었지만, 공사를 코앞에 두고 다른 손을 쓰지는 못하셨다. 결국 아이들이 철거 공사를 코앞에 두었을 때, 거기서 살아나게 된 건 진과 혜진 씨가 ‘어떻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냥 태어나서 사람 손 타며 살던 고양이들이 하루아침에 산으로 쫓겨가거나 철거되는 건물 안에서 마지막을 맞았을 것이다. 이것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냥 일어나는 일이어야 할까. 답이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시 재개발이라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이는 일에서, 원래 살던 생태계의 일원에게 대안을 마련해 주는 일이, 정말로 그렇게 안 되는 일일까.


유별난 누군가가 따로 애를 써야만 피할 수 있는 비극인 걸까. 정말 그럴까. 질문이 잘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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