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입양을 취소하려고 합니다.
보호자는 간단한 단어 몇 개로 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를 보낸 이는 진과 입양 상담을 진행하고 그간 소통했던 보호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남편이었다. 현실감을 잃을 만큼 사뭇 담담하고 당당한 태도였다. 결국 메이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메이를 다시 만나고도 반가워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는 슬프고도 화가 났다. 메이가 입양 간 지 일 년이 된 참이었다.
입양이든 파양이든, 고양이의 거취는 어느 한쪽이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은 처음 입양을 신청했던 보호자와 다시 소통을 요구했다. 그 사람들이 내세운 사유는 이랬다. 메이 입양 후에 보호자가 출산을 했고, 메이가 누워있는 아기 위를 뛰어넘어 다닌다는 것. 진에게 그 말은 전해 듣고 나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겠지. 출산과 관련한 복잡한 사정이 있을 텐데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이 정말로 이유였다.
메이가 자주 아기 위를 넘어 다녔고 그 일로 남편과 갈등이 깊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메이에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해 고양이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들은 얘기는 그런 식이었다. 메이보다 먼저 있던 첫째 고양이는 계속 키울 예정이라고 했다. 아기 위를 넘어 다니지 않아서라는 말일까. 진은 아기가 누워있는 장소를 왜 고양이와 분리하지 않았는지부터,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조치를 상의하고자 했지만 보호자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입양 과정에서 우리에게 약속했던, 출산과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고양이 양육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던 말은 손쉽게 으스러졌다.
물론 파양의 뜻을 전한 시점부터 이미 우리는 보호자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언제 어디서나 변수가 생겨난다는 걸 우리도 안다. 그래서 함께 상의하고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인데, 보호자들은 마치 메이가 떼어내야 할 불편한 문제인 것처럼 이 과정을 대했다. 뒤늦게 혼자 사는 남동생에게 보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지만, 양육 경험과 의지가 없는 보호자에게, 그것도 하루종일 원룸에 고양이가 혼자 있어야 하는 환경에 아이를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메이의 편이라고 생각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메이는 돌아와야 했다.
모든 파양이 이렇게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올해 입양 갔던 다른 친구의 보호자는 시작부터 양육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몇 달간 꾸준히 노력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걸 즉시 깨닫고서도 아이에 대한 책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전 과정에 진이 함께했다. 고양이에게 더 나은 방향을 더불어서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파양의 결정도 진과 보호자의 오랜 상의 끝에 나온 공동의 것이었다. 실수와 잘못이 있었고 후회와 미안함이 남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거기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다.
실은, 이 모든 이야기에서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내가 바로 입양한 고양이를 파양 하려고 했던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나도 첫 고양이 히리와 약 일 년 여를 보낸 시점이었다. 집안의 특별한 변화도 없었는데 히리가 침구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약 2주간 하루에 두 번씩 이불을 빨았고, 배변 자국으로 가득 얼룩진 매트리스는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집안이 매일 소변 냄새로 가득찼다. 당시 나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뭐가 불편했을지 더 고려해보지 못했고, 스트레스에만 매몰되어 그 시간을 보내다 결국 원보호자님에게 연락했다.
그때 원보호자님과 함께 다른 입양처를 구하는 동안에, 정말로 입양처가 구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히리의 소변 사고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정말 내가 히리를 떠나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추가적인 노력도 없이 히리는 소변 실수를 멈추었고,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히리와 6년의 가득한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고양이도 잘 모르고 책임감도 충분하지 않았던 나에게 과분한 복이었다.
내가 정말 겁나는 것은, 히리와 행복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까 봐가 아니다. 그때 히리가 다른 집으로 떠나게 되었다면, 히리가 없어져서 편해졌다고 내가 생각했을까 봐. 히리에게도 이게 더 잘된 일이라고 위안을 했을까 봐. 아, 고양이 돌보는 거 힘들었어. 히리도 이제 좋은 보호자 만나서 잘 살 테니 다행이야. 홀가분하네.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마땅히 짊어졌어야 할 몫을 간단히 내려버리고, 고양이에게도 나은 선택을 했다는 말로 죄책감을 덮어버리고서, 마치 히리의 일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그렇게 속 편하게 생각하고 지워버렸을지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무섭다.
메이를 파양 하면서 메이의 보호자는 진에게 온갖 이유와 사정을 설명했다. 메이가 아기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중심에 두고, 본인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고 파양이 왜 불가피하며 고양이에게도 나은 일인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유가 있다는 데 집중하려고 했다. 입장을 이해받으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메이를 데려온 뒤 메이의 안부에 대해 전혀 물어오지 않았다. 내가 두려워한 그 길로 그 사람들은 걸어 들어갔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내려놓고 간 것이 고양이 한 마리만이 아니라는 걸 언젠가 그들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꼭 다시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