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프레임 안에는 진의 손이 있다. 그리고 손바닥 만한, 겁에 질린 아기고양이가 있다. 손은 천천히 고양이를 향해 간다.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소리를 지른다. 손은 포기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몸부림을 받아내며 참을성 있게 다가간다. 이윽고 손이 고양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게 되었을 때, 고양이의 각진 마음이 조금 동그래진다. 영문 모를 따뜻함에 눈을 깜박. 깜박. 깜박.
줄다리기하는 고양이의 이름은 꿀벌이다. 일전의 써니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사연으로 구조되어 시보호소에 있었고, 역시나 공고기간이 지났다. 유리 입원장에 자리가 나기 전에는 잠시지만 뜬장에서 시간을 버텨야 하기도 했고, 좁은 입원장 안에서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낸 상태였다. 약간의 손길에도 매섭게 반응할 정도이니 입양도 요원하고, 그대로라면 안락사나 방사의 길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재개발지역 유기견들을 구조하는 일로 시보호소를 자주 방문하게 된 진은, 그곳에서 공고기간이 지난 고양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마땅히 손을 쓰지는 못하던 곳이었는데, 자주 발길이 닿다 보니 눈길도 점점 오래 머물게 되었다. 특히 어린 고양이들은 이 시기가 입양 기회가 가장 많을 때라 도울 수 있다면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입양 홍보라도 함께 해보면 좋은 묘연이 닿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보호소 아이들 홍보에 조금 더 힘을 기울여 보게 되었다.
입원장이라는 낯설고 차가운 환경에서도 사람의 손길을 반가워하고 살갑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겁을 먹고 모든 외부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고양이들도 당연히 있다. 꿀벌이는 그 가운데에서도 남달랐다. 한두 번 펀치나 하악질을 하고 구석으로 도망치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걸 걸고 대적하겠다는 듯이 쉴 새 없이 펀치와 하악을 연발했다. 두려운 마음에 무슨 짓이든 해보려는 몸짓이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그런 시기를 거쳐 사람을 알아보고 편안해지는 과정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웃으면서 계속 가까워지려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예상밖의 손길에 어떤 부드러움을 느끼고는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정지한 모습도 귀여웠다. ‘이게 뭐지 약간 좋은데?’ 하는 것처럼, 흔들리는 눈빛.
진은 아이의 이런 짧은 변화 과정을 담아 입양홍보 게시물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은 특별한 일을 만들었다.
꿀벌이의 난폭한(?) 반항과, 손길을 느껴버린 온순한 눈빛의 반전. 거기서 생겨난 물결이 인스타의 알고리즘을 타고 널리 널리 퍼져갔다. ‘좋아요’ 개수는 몇십만을 넘으며 신기록을 달성했고, 덩달아 계정의 팔로워 수도 훌쩍 늘어났다. 꿀벌이 귀여움의 강력함에 우리는 모두 놀랐지만, 실은 함정이 있었다. 열렬한 호응의 상당수는 해외 유저들이었다. 진의 계정은 현재 입양홍보가 우선적 목적이다 보니 입양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외국인들의 좋아요와 팔로잉은 큰 의미가 없었다. 새로 생긴 팔로워 중에는 유명 샐럽인 ‘닐 패트릭 해리스’ 같은 사람들까지 있어서 우리는 이게 왜 진짜냐며 신기해하긴 했지만 아주 실속 있는 흥행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수 놓인 하트와 댓글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편안해지길 기원하고 그걸 돕는 진에게 보내는 응원이 한가득 있었다. 거기에 힘을 얻어 진도 꿀벌이 입양 홍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여전히 케어의 여력이 많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손을 태워 입양을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시보호소에서 꿀벌이를 데리고 나왔다.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는 절차는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결국 이건 꿀벌이를 진이 책임진다는 뜻이 된다.
사무실에는 당장 공간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꿀벌이는 개별 관리가 필요했기에 진은 꿀벌이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침실의 격리장에는 꿀벌이가, 침대 위에는 진이 앉았다. 입원장에서 침실로, 진의 손과 꿀벌이는 조금 더 너른 프레임 안에 다시 마주 앉은 셈이었다. 개인적인 시간을 차츰 가져가면서 손을 태워보리라. 진은 얼마가 될지 모를 사랑의 줄다리기를 다시금 다짐했다.
하지만 운동장을 옮긴 이 경기는 달콤할 정도로 일찍 끝나버리고 말았다. 환경이 바뀐 꿀벌이는 금세 다른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방안 격리장에서부터 벌써 눈빛이 변하고 손도 잘 받아주더니 어느새 골골송을 부르고 있었다. 격리장 문을 열어주고 나서는 침대에 올라오기까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겁은 여전히 있지만 그만큼 호기심도 많고, 집안의 언니오빠 고양이들과도 큰 무리 없이 차츰 접촉을 늘려가는 중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 동물들의 마음속 부드러움을 얼마나 꺼낼 수 있는 것인지.
꿀벌이의 입양홍보 게시물에는 다양한 언어의 댓글이 많이 수 놓여 있다. 그중에는 꿀벌이에게 다가가는 진의 손을 이야기해 주는 댓글들도 꽤 있었다. 지난 몇 년간의 케어로 고양이들에게 받았던 할큄 자국이 생겼다, 아물었다, 흉터가 남았다, 하면서 진의 몸 여기저기에는 그림이 많이 남았다. 사진 속 상처는 진의 온몸에 난 것들 작은 한 조각일 뿐이었지만 그걸 눈여겨보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걱정과 격려를 보내주는 예쁜 마음들이 있었다. 그중에 유독 눈에 들어왔던 짧은 댓글. 마치 진의 지난 생활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눌러 담긴 단어로 표현해 준 한 줄의 글이 우리 마음에 콕 박혔다.
‘상처 난 다정한 손’
그건 진에게만 닿는 말이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손바닥 만한 고양이가 매섭게 손을 휘저어대는 건 실은 세상을 아직 모르고 그래서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전에 구조되어 낯설고 비좁은 장을 옮겨 다녀야 했던 과정이 짧은 생에 너무 많이 몰려온 상처였을 테다. 그 상처 아래 속살에는 다른 존재와 이렇게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픈 다정한 마음이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상처 난 다정한 손’은 진의 그것이기도 하겠지만, (마음에) 상처가 난 (사실은) 다정한 손(바닥만한 몸)이라고 부른다면 그건 꿀벌이에게 맞춤한 수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