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양이 개인주의자 선언

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by 정재광


겨울이 끝나가던 무렵 나와 진은 함께 히리를 하늘나라로 배웅했다. 공교롭게도 진과 내가 만날 즈음부터 건강이 나빠진 히리는 한 달 여간 투병 끝에 우리가 다시 만날 곳으로 먼저 가 있게 되었다. 고양이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우리 할아버지 무덤 옆에 묻으면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히리를 보내는 일이, 동시에 히리를 남기는 일 같아.”


핸드폰 안이나 책상 위, 거실바닥과 창가에까지 남아있는 히리들을 보면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이 얼마나 내게 깊숙한 일인지도 다시 생각했다. 히리에 대한 고마움이 ‘고양이 있는 삶’을 조금씩 다시 그려나가게 했다. 어느새 진과 나는 입양처를 알아보고 있었다. 고양이카페와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도그마루, 포인핸드 등등 갈 곳 잃은 고양이들이 정말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다 고보협 사이트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제 생애 이런 개냥이는 처음입니다.” 보호자분은 회사 사무실로 따라들어온 길고양이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댁에도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고 있고 길고양이를 여러 마리 구조해 입양보낸 경험이 있는 분의 말씀이라 더 신뢰가 갔다. 동네에서는 아파트 주민분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다거나, 사무실 근처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는데 사람이 안아 올려도 얌전하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이미 흥분했다.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받아보고서는 참았던 탄성을 낮게 뱉을 수밖에 없었다.


외모지상주의자인 내 눈에 히리는 완벽한 고양이였지만, 성격이 살가운 고양이는 아니었다. (히리 자신도 인정한 바다.) 하루에 세 번 정도 허락을 받고 만질 수 있었고 안아드는 건 연 1회 사용권이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람을 따라걷는 그 고양이의 모습에 난 반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있는 곳이 강원도 동해라는 점 때문에 5분 정도 망설였을까. 진과 나는 얼른 날을 잡고 분당에서 동해로 가는 길을 검색했다.


약속일은 히리를 보낸 지 한 달 정도 되던 날이었다. 둘이서 떠나는 첫 여행이기도 했으니 그날 진과 나는 얼마나 설레었던지. 둘 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아침 일찍 김밥 두 줄기를 들고 만났다. 동해까지 가는 두 시간여 동안 그 귀여운 녀석의 실제 모습을 상상하며 데리고 오면 얼마나 재미난 일이 많을지 옹알종알 이야기 나누었다. 아직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내게는 동해바다의 따듯한 햇살만이 비쳤다.


약속장소였던 동물병원에 도착해,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나는 주차하는 진을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보호자분과 인사도 나누기도 전에, 고양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갸아아아웅”


동그란 외모와 달리 앳되고 간드러지는 소리를 내며, 고양이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내게로 달려왔다. 이걸 믿을 수 있을까. 처음 만나는 고양이가 나를 반기며 다리에 얼굴을 부벼대는 그 광경을. 진이 뒤따라 들어오자 고양이는 이번엔 진에게 달려가 인사했다. 긴 말은 필요없었다. 원보호자분께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담아 잘 키우며 연락드리겠노라 인사드리고 우리는 곧바로 출발했다.


오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게 도로 위의 2시간을 참아주었다. 병원 가느라 10분만 택시를 타도 목놓아 서러움을 토하던 히리가 생각나 미안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앞으로 편하게 키우겠단 생각에 옆구리에서 배실배실 웃음이 기어나왔다. 나에게 개냥이라니, 우리집에도 이런 개냥이가 찾아오다니!


고양이의 연기는 절정을 향해 갔다. 집안에 도착하자 잠깐 주변을 둘러본 뒤에 내 다리 사이에 폭 하니 엉덩이를 깔고 앉는데, 나는 완전히 넉다운되었다. 그래 고양이야, 여기가 네 집이야.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 번 꺾여있는 짧다란 꼬리를 방방 흔들면서 자기도 맘에 든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진은 특히 동해의 목소리를 사랑한다며 고백했다.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꿈에서 깨어나는 데는 단 이틀이 필요했다. 고양이는 돌변했다. 가까이 다가와 앉는 일도 없었고, 안아 올리면 죽는 소리를 내며 거부했다. 심지어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 목소리로……. 하하. 고양이는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손에 잘 닿지 않는 곳에 고적하게 앉아있기를 즐겼다. 그 자태가 또 고와서 우리는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꼼짝없이 우리 가족이 된 시점에 고양이는 독립을 해버렸다. 진과 나는 사기를 당했다며 꺼이꺼이 바닥을 쳤지만 고양이 얼굴을 한 번 바라보면 다시 헤벌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다. 우리에게 와준 것으로 고양이는 자기의 몫을 다 했다는 걸. 더 남은 게 있다면 지금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주는 것. 동생냥이들의 장난을 어른스럽게 받아내며 맏고양이 역할을 해주는 것만 봐도 더 바랄 것 없이 고마우니까.


코에는 생크림을 묻히고 짤동한 꼬리를 흔드는 우리 맏이. 동해 바다의 일출을 닮은 이 고양이를 우리는 ‘동해’라는 이름으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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