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시 만난 세계

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by 정재광


진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유치원 건물을 한 바퀴 돌아서 내달렸다. 들어선 곳은 오래된 소나무 세 기둥이 감싸고 있는 작은 정원이었다. 발목까지 오는 잔디와 수풀 사이로 길고양이 두 마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등어 무늬와 삼색이, 둘 중 어느 쪽도 노을이가 아니었다.


진과 나는 몸이 아픈 치즈색 길고양이 노을이 뒤를 좇는 중이었다. 구내염 탓에 입안 염증이 많이 난 노을이는 식사도 어려웠지만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못해 털 상태가 엉망이었다. 조금이라도 약을 먹여 보려고 간식에 섞어 내밀었는데 건물 뒤로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우리가 정원에 들어섰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노을이가 아니라 낯이 익은 삼색 고양이의 뒷모습이 있었다. 내가 뭔가를 깨닫고 입을 떼려할 때 진이 먼저 외쳤다.


“저거, 초희 아니야?”


초희를 처음 만난 건 그로부터 약 반 년 전, 겨울이를 우리집으로 데려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제보를 주신 건 레니 캣맘님. 레니 캣맘님은 겨울이와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알게 된 선배 캣맘이었다. 완전 초보였던 진과 나는 레니 캣맘에게 자주 조언을 얻고 있었다.


“진이 씨, 겨울이가 있던 탄천가 자리에 새끼 삼색냥이가 또 있어요!” 우리는 한달음에 탄천가로 달려갔다. 겨울이가 주로 나와 놀던 잔디밭 바로 옆에 1평짜리 컨테이너가 하나 있었다. 아마 환경미화와 관련된 곳 같았는데 용도를 알 길 없던 우리는 그곳을 그냥 초소라고 불렀다. 초소 아래 흙더미의 작은 틈에 조그마한 눈동자 두 개가 빛나고 있었다.


겨울이보다는 경계가 심했지만 삼색이 초희도 곧잘 우리 앞으로 나와 츄르를 받아먹었다. 삼색이라고는 해도 몸의 대부분이 새하얀 아이였다. 마치 도화지에 몇 방울 물감 자국이 번져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몸의 왼편에는 하트 모양 물감이……. 진은 그 시점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고, 나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내가 무너진 건 살짝 안쪽으로 모인 두 눈. 속을 알 수 없어 보이는 고양이야말로 매혹적이니까. 초희라는 이름도 레니 캣맘이 지어주셨다. 초소에 사는 여자 아이. 길고양이 이름은 직관적인 게 최고라는 말씀. 10월의 탄천가는 훈기가 완연했다.


아쉽게도 우리의 첫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얼마 뒤 초희는 사라졌다. 정확히는 레니 캣맘님이 TNR 사업에 신청해 초희를 중성화하고 방사해주신 직후였다. 수술과 방사 과정에서 영역을 옮기는 고양이들이 있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초희의 안녕을 마음으로 바랄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겨울로 들어서면서 우리집 겨울이도 집안 생활에 적응해가며 동해와 잘 지내고 있었다. 진과 나는 하나둘 길가의 밥자리를 발견하고 또 만들어주면서 이웃 고양이들을 알아가는 시기를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어쩌면 초희는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치 노을이가 안내라도 해준 것처럼, 그 정원에서 마법같은 순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시 만난 초희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고등어 고양이가 옆에…… 어라? 초희 옆에 있는 고양이는 겨울이였다. 아니, 겨울이와 꼭 닮은 고양이였다. 두 마리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정원을 오가며 놀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둘은 이미 단지 내의 명물로 주민들이 모두 아는 단짝이었다. 둘 외에도 그 정원과 주변에 길고양이들이 여럿 있었고 다른 캣맘님들이 밥을 챙겨주는 자리가 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양이와 캣맘은 어디에나 있었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초희가 바로 우리 근처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초희와 초울이-초희와 붙어다니면서 겨울이를 꼭 닮은 이 아이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를 매일 만났다. 오후 네 시에 정원으로 가면 하원하는 유치원 아이들과 초희, 초울이를 꼭 만날 수 있었다. 그 생기발랄한 존재들이 주는 에너지를 진과 나는 매일 나누어 받았다. 인연이 주는 선물이 매일 오후 노을처럼 우리를 찾아왔다.


한 번 만났다가 헤어진 고양이를 더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초희는 마치 스스로 찾아온 것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더 흔들었던 건 겨울이와 초희가 같은 자리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또 초희와 꼭 붙어다니는 초울이와 겨울이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이 모두 형제인 건 아닐까?”


다같이 잘 지내던 아이들을 우리가 생이별이라도 시킨 걸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마가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따라오며 배를 뒤집어 보여주는 초희를 보며 우리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우리는 초희와 초울이 두 마리를 함께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건 결코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지만 그즈음 구체화되어가던 ‘진의 꿈’이 우리를 단단하게 했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두 마리의 포획을 계획했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을 난관을 상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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