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예쁘게 생긴 품종묘니까 아마도 한때는 대우받으며 지냈을 것이다. 여유 있는 집에 입양되어 한동안 안락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유기되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였을 수도 있고, 고양이가 뭔가를 물어뜯어서였을 수도 있고, 이사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든,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고양이는 유기되었다. 그리고 3년이 넘게 주택가 근처에 살면서 떨어진 음식 찌꺼기나 가끔 누군가 챙겨주는 사료를 먹고살았다. 주변에 수컷 고양이도 많았다. 수 차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몸이 지쳐갔다. 얼마 전 또 세 마리 새끼를 낳았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그게 진을 호출한 러블 캣맘님이 풀어준 사연이었다. 어느 곳이나 주택가는 유기묘가 많이 발견된다고 했다. 쉽게 구조되지 않아 오래 지켜보기만 한 그 아이를 함께 데리러 가자는 제안이었다. 함께 구조 일정을 잡고 전날 사전답사 차원에서 두 사람은 고양이들을 보러 갔다. 캣맘님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챙겨준 밥자리에 아이들이 있었다. 2-3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새끼 고양이들. 진은 그렇게나 어린 고양이를 처음 만났다. 단지 구석의 작은 공터에서 손바닥 만한 아이들이 폐기물과 건축 자재 틈새를 비집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제일 작고 몸이 약해 보이는 녀석이 유독 진의 눈을 붙들었다. 검은콩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아이가 자기 덩치와 비슷한 담뱃갑 옆에 쭈그리고 앉아 불안한 듯 한쪽 눈을 껌벅거리고 있었다.
구조 당일, 형제 두 마리는 다행히 포획틀로 금방 구조에 성공했다. 막내로 추정되는 그 작은 아이가 문제였는데, 겁도 많고 항상 도망을 다녀서 캣맘님은 가까이서 본 적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진은 전날 아이와 눈을 마주쳤던 자리로 조심히 다가가 습식사료를 두고 한 발 물러섰다. 그 사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일까, 아이는 잰걸음으로 다가와 얼굴을 콕 박고는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진은 어쩐지 편안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살며시 다가가 아이를 들어 올렸다. 고맙게도 녀석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진의 두 손에 쏙 들어와 주었다.
내친김에 아이들이 들어간 이동장으로 유인했더니 어미 러시안블루까지 금세 구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간 먹이로 유인할 때는 전혀 구조되지 않아서 걱정을 했던 것인데, 자식들 걱정에 금방 틀 안으로 들어와 준 것이었다. 진은 모성을 이용한 것 같아 한편으로 미안했다고 나중에 말했지만, 그럼에도 식구가 한 번에 구조된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갈 때 나도 합류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빛이 고운 어미와 새하얀 두 형제도 예뻤지만, 혼자서 검은 털에 두 눈을 감추고 온몸을 움츠린 막내에게 나 역시 눈길이 한 번 더 갔다. 이동장 벽에 두 발을 꼭 붙이고 그거라도 붙잡으려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다 같이 기본검사를 받았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막내가 너무 약했다. 눈에 염증도 있고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 따로 식사를 챙겨줘야 했다. 생후 8주로 추정되지만 몸무게는 6주령에도 미치지 못하는 500그램이었다. 형제 중 큰 아이는 1킬로그램인 데에 비하면 절반이었다. 본래 구조를 주도한 러블 캣맘님이 아이들을 모두 임보 할 계획이었지만 그 댁에는 이미 다른 고양이들도 있어 막내를 따로 돌볼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진과 나는 고민 끝에 그 아이를 우리 집에서 잠시 맡기로 했다.
녀석은 노란 이동가방에 들어간 채로 내 방에 설치된 격리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초희가 들어와 사용했던 격리장이었다. 초희가 보름간 격리를 마치고 동해, 겨울이와 합사 한 직후였으니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할까? 격리장을 정리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새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엄마가 러시안블루고 온몸이 푸른빛이 은은하게 도는 검은색인 이 아이의 이름은 ‘베리’가 되었다. 검은 몸과 푸른 눈, 그리고 자그마한 몸에 영감을 받아 나는 몰래 똥파리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똥파리 베리는 숨는 데 귀재였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어떻게든 더 구석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낯선 곳에 떨어진 본능이었겠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입과 발을 제외하면 온몸이 검은색이라 어두울 때는 가만히 있어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진을 찍으면 입 주변의 하얀 하트만 보일 정도였다. 어느 날은 격리장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바깥에 나와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제대로 홍길동 모드가 발동되어 숨숨집이나 가구 틈새를 누비며 도망 다녔다.
걱정했던 몸상태를 생각하면 그런 활달한 움직임도 긍정적인 신호였다. 밖에서는 아마 형제들에게 밀려 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텐데, 마치 한을 풀듯이 잘 먹고 부쩍부쩍 자랐다. 눈의 염증과 꼬리 끝의 작은 상처도 먹는 약, 바르는 약을 거르지 않으니 점차 완화되었다. 구조 당시에 한쪽 눈을 거의 못 뜨는 걸 보고 큰 질병일까 염려했던 터라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놓였다. 고양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해도 걱정의 9할은 없어진다는 말이 맞았다. 베리는 하루가 다르게 몸에 살을 붙여가며 컨디션을 찾아갔고, 우리도 더 편한 마음으로 베리를 돌볼 수 있었다.
3주 만에 2차 접종을 맞으러 가서 재어 본 베리의 몸무게는 무려 900그램이었다. 매일 볼 때는 그 정도인 줄 몰랐는데 그사이 베리가 ‘곱하기 2’가 되었다니! 500그램일 때 베리는 생명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각 같았다. 앞으로 빛날 가능성을 품었지만 아직은 그 무엇이 되지 못한 작은 조각. 당장이라도 사그라들 것 같던 생명이 그렇게 살집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덩치가 커지고 활동력이 좋아질수록 바닥에 쓰러지는 물건이 하나씩 늘어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내가 다시 세워놓으면 되니까. 베리가 뿜어내는 생명력에 비하면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한 것이었다.
나는 베리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베리를 임보하기로 했을 때는 진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했지만 사실 걱정과 부담이 컸다. 초희도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초울이도 곧 데려올 예정인데 -진이 자주 오가며 많은 일을 해주었지만- 내가 앞으로 다섯 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돌볼 수 있을까? 몸이 약한 새끼 고양이를 데려오는 게 괜찮을까? 동해, 겨울, 초희에게 별다른 영향은 없을까? 눈앞의 베리에게 마음이 쓰이면서도 많은 생각이 빠르게 오고 갔었다.
그렇지만 건강해진 베리를 다시 바라볼 때 그런 걱정은 잦아들었다. 가진 것도 많지 않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린 눈망울에서 두려움을 거두는 일만큼은 내가 할 수 있었다. 조금 마음을 기울이는 것으로 그런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그러가던 생명이 두 배로 에너지를 넓히고, 안으로 침잠하던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모든 건 단 오백 그램에서 시작된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