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른의 소꿉놀이

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by 정재광

단풍이 완연한 가을이다. 이제는 훈기를 품은 한낮의 산들바람 속에도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바깥에서만 살아야 하는 길고양이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내 온도 감각도 길 생활에 맞춰지는 것 같다. 코 끝이 시큰해지고 슬슬 점퍼 생각이 난다면 길고양이 겨울집을 준비할 철이 되었다는 뜻이다.


작년 이맘때, 진은 탄천가 맞은편 카페 정원에서 혼자서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처음 겨울집을 만들던 날이었다. 기성품으로 판매되는 길고양이 겨울집 안쪽에 단열재를 덧대고 밖은 비닐로 몇 겹을 더 둘러 보강했다. 박스 위에는 길고양이 돌봄 활동에 대한 안내 문구가 잘 보이도록 붙여 마무리했다. 바닥에는 버려진 합판을 깔아 한기를 막았고, 안쪽에는 두툼한 담요를 깔았다. 마지막으로 집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양 옆에 벽돌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눈에 그건 마치 좀더 어른스럽고 본격적인 모양의 ‘소꿉놀이’처럼 보였다. 어린 아이가 엄마나 아빠 역할을 맡아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처럼, 진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 고양이들이 오가는 덤불에 겨울집을 잘 숨겨두고, 몇 걸음 띄워서 물과 사료를 둘 밥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매일 그 자리를 들여다보며 깨끗하게 닦고, 물과 사료를 채웠다.


생각해보면, 소꿉놀이라는 게 이미 어른스러운 행위 아닐까? 응석만 부리는 자리에서 한 발 나아가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다른 이를 돕는 연습을 하는 것이니까. 아직 길고양이 생태를 잘 모르던 그때의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볼멘 소리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설득하고 손가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진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어린 아이처럼 웃었다. 진은 그때 한 뼘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새로 연 밥자리의 단골 손님은 우리가 ‘밤이’라고 이름 붙인 턱시도 고양이와 ‘달이’라고 부르는 고등어 고양이였다. 다른 고양이들도 오가는 것 같았지만 쉽게 마주치진 못했다. 밤이와 달이도 가끔 어둠 속에서 스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모처럼 마련한 자리인데 누가 이용하는지도 모르는 게 억울해서 어느 날은 둘이서 도로변에 차를 대고 잠복하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다 고양이 그림자라도 보이면 조심스레 따라가다 도망치는 뒤꽁무니만 겨우 보고는 어느 고양이일지 추측하는, 그런 놀이에 열을 올렸다.


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소꿉놀이는 사실 길고양이들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날씨는 금세 매서워졌고 도심의 건물이나 수풀 사이에 체온을 지킬 만한 곳은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고양이라면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구석진 곳을 찾아보아도 모두

하다는 게 조금씩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진이 정성스럽게 만든 겨울집도 추위를 이기기에는 충분치 않아 보였지만, 우리는 하루에 두 번씩 번갈아 가며 그곳을 살폈다.


핫팩 두 개를 열심히 흔들어 바지 주머니와 허리춤에 끼워넣고는 종종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가 하나는 담요 밑에, 하나는 새로 채운 물그릇 아래에 넣어두었다.(물이 금방 얼어버리는 게 큰 문제였다.) 아이들이 주로 찾아올 밤 시간에 바꿔주고 아침에는 그게 얼마나 굳었는지, 혹시나 온기가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있다면 누군가 와서 쉬다 갔다는 뜻이었고, 그게 다시 우리 마음을 데워주었다.


그 추운 날들 가운데 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곳을 드나들었는지, 되돌아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겨울이와 초희를 만난 곳이자, 우리가 첫 겨울집을 꾸린, 추억의 장소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씩 봄이 다가올수록 그곳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었다. 고양이들이 주로 탄천가에서 올라올 것이라는 우리 예상과 달리, 실제로는 반대편 주택가에서 도로를 건너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량이 많은 도로는 아니었지만 로드킬의 위험은 언제나 있었다. 실제로 지난 여름에 같은 길목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고양이들이 계속 그 찻길을 건너도록 둘 수는 없었다.


이윽고 추위가 말끔히 달아난 봄날, 우리는 막 피어난 개나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를 완전히 정리했다. 늦가을에 시작해 다음해 봄을 맞을 때까지 겨울 한 계절을 지킨 말 그대로의 ‘겨울집’, 우리의 첫 겨울집이었다. 마지막 바닥의 합판을 치우면서도 진은 못내 서운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매일 겨울집과 밥자리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위와 어둠 속에서 실제로 고생을 꽤 했고, 경험조차 없던 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날씨가 정말 추웠기 때문이다. 잠깐 추위를 타다가도 얼른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와 달리 길 위의 어떤 존재는 그 엄혹함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많은 도구와 장치의 도움을 받는 인간에게도 혹독한 이 겨울이 길에 사는 생명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구석에 마련한 작은 박스만으로도 그 생명이 온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배울 수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다른 존재에게 일말의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손발을 움직이게 했다. 친구와 가족을 위해 놀이터에서 모래밥을 짓는 자그마한 고사리손처럼 우리도 조금씩 어른을 흉내낸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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