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인 ‘묘(猫)’가 ‘묘하다’하는 말과 소리가 같다는 건 참 절묘한 일이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일어날 정도니까. -심지어 영어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말인 ‘meow’도 ‘묘’와 소리가 비슷하다.- 이 신묘한 친구들은 높은 곳을 오르내릴 때도 우아한 리듬을 구사하고, 콩알만 한 틈이라도 보이면 몸을 축소시켜 스윽 들어가 버린다.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가 잠깐 눈을 돌린 사이 사라져 버릴 때는 얕은 소름이 돋기도 한다. 어쩌면 ‘묘하다’는 말의 숨은 뜻이 ‘고양이 같다’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에 나올 것만 같은, 우리 세계 반대편에 숨어 사는 작은 요정들. 사람의 눈을 피해 가며 이 세상의 빈틈에서 자기들끼리 사회를 구축해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진과 나는 바로 그 고양이들의 숨은 세계를 찾아냈다.
냉랭했던 날씨가 조금 너그러워지고, 선선한 바람에 섞인 훈기처럼 좋은 일이 찾아와 줄 것 같은 오후였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탄천가 겨울집을 확인하러 오솔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울집 부근에서 튀어나와 재빠르게 도로를 건넜다. 겨우내 낮시간에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반갑게 놀랐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진은 이미 고양이를 따라 주택단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고등어 무늬인 걸로 보아 우리가 밤이라고 부르는 아이인 것 같았다. 중학교 담장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이번에는 카오스 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다소곳하게 꼬리를 말아 올리고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마치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세계로의 환영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카오스 고양이(별이)는 진이 건네는 간식 조공을 여유롭게 받고는, 담장길이 끝나는 길 모퉁이로 우리를 안내했다. 거기에 빈 사료 그릇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밥자리다!" 진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곳에 길고양이 밥을 주는 분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울타리 안쪽 저 멀리 아까 도로를 건넜던 밤이(겨울집 단골손님)와 코찡이(가끔 오시던 손님)가 나란히 앉아있는 게 보였다.
“너희 안식처가 여기 있었구나!”
밤이나 별이, 코찡이 모두 머무는 곳을 본 적도 없고 고정된 식사자리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밥자리와 겨울집을 제공하면서도 진은 늘 걱정이 많았다. 아이들의 거처와 밥자리를 챙겨주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놓여있던 그릇에 간식을 놓아주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까지 녀석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울타리 안쪽이라 안심이 되어 그런지 세 고양이는 우리와 꽤 가까운 곳에 앉아서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예쁘게 그릇을 비웠다.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니. 오히려 탄천가 겨울집보다 우리집에서 더 가까웠고 심지어 겨울집에 가느라 매일 오가던 길목이었으니, 그때까지 몰랐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정말 보이지 않는 장막이 고양이들을 가리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그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한 블록 건너 아파트 단지 화단에 고양이 두 마리가 호젓하게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그런 표지판이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내가 저것 좀 보라고 말하기도 전에 진은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날씨는 살랑거렸고, 요정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흩날리는 진의 머리칼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설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의젓한 고등어 고양이와 아직 앳된 삼색 고양이였다. 우리는 맡아두었던 걸 돌려주듯 간식을 꺼내드렸다. 고등어 고양이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작은 아이가 천천히 먹는 걸 지켜보았다. 우리도 그 모습을 같이 바라보고 싶었지만 곧 요가 수련을 갈 시간이었다. 남은 간식을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준 뒤 다음날 그릇을 치우기로 하고 먼저 일어섰다.
“몇 달 동안 한 마리도 얼굴을 제대로 못 봤는데, 하루만에 이렇게 되는구나!” 진은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처럼 감격했다. 챙겨야 할 식구가 늘었다는 책임감에 진도 나도 결연한 마음으로 그날의 수련에 임했다. 더 깊게 숨을 들여마시고 더 넓게 내쉬었다.
그런데 그날 우리가 본 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세상의 입구에 불과했다.
다음날 아침 내가 그릇을 치우러 나간 길이었다. 그릇을 거두고 아파트 화단을 따라 걸어오는데 이번에도 처음 보는 고양이 두 마리가 나뭇잎 더미를 둥지 삼아 나란히 앉아있었다. 노란빛 노을이와 줄무늬 시내였다. 한눈에 둘 다 아픈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침이 바닥에 닿을 듯했고, 오랫동안 그루밍을 못한 털은 지저분하게 엉켜있었다. 특히 치즈 고양이 노을이는 몸 곳곳에 털이 빠져 선홍빛 피부가 드러났다. 등에는 온통 낙엽이 어지럽게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걱정보다도 당혹스러움이 먼저 몸을 휘어 감았다. 마음이 아픈 동시에 약간 무섭기도 했다. 나는 얼른 사진을 찍어 진에게 보냈다. 어쩔 줄 몰라하던 나와 달리 진은 침착했다. 아무래도 구내염이 의심된다며, 약을 먹여야 한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다급히 만나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다.
진과 함께 약과 습식사료를 들고 같은 자리를 찾았을 때는 오후의 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런데 약을 간식에 섞어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이 화단 안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당황한 우리도 바로 옆 건물인 유치원을 지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건물을 돌아 나오자 꽤 널찍한 공터(우리는 정원이라고 불렀다)에 먼저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 노을이와 시내, 전날 만난 의젓한 고등어냥이, 그리고 우리가 지난 가을 잃어버렸던 삼색 고양이 초희가 모두 모여 있었다.
정원은 여러 고양이가 쉴 수 있을 만큼 넓고 수풀이 우거진 공터였다. 주변의 시선을 가려줄 나무나 바위도 충분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밥그릇과 물그릇도 나란히 놓여있었다. "여기가 너희 세계구나. 다들 여기서 지내고 있던 거구나." 우리는 놀랐고, 또 안도했다. 고양이들끼리 어울려 사는 그 ‘이상한 나라’에 비로소 우리가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실은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빈틈 같은 세계가 우리에게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었다. 상냥하면서도 신비로운 인사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 말을 ‘(마음을) 여는 만큼 보인다’로 고치고 싶다. 길고양이들 세계는 평소에는 사람의 눈을 피해 가려져 있다. 고양이들이 신묘한 재주를 부려 놓았을 것이다. 그러다 만약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리고 그 사람이 믿을 만하다면 고양이는 자기들 세계로의 통행권을 그에게 슬쩍 뿌려준다. 그러면 비로소 오묘한 장막이 걷히고 길가 곳곳에 피어난 고양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에게도 귀한 통행권을 허락한 길고양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특별한 초대에 맛있는 감사인사를 보내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