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번 TNR은 처음이라

초보캣맘 커플의 캣-돌봄 이야기 <서터릿 캣 Street Cat>

by 정재광

초희를 다시 만난 직후 진과 나는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3개월 추정이던 조그만 초희를 처음 탄천에서 발견하고 우리에게 소개해주신 분. 바로 레니캣맘님이었다. 밥자리를 챙기는 것은 물론 직접 중성화까지 해주셨는데 방사 얼마 뒤부터 아이가 보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돌보던 아이가 없어지는 경험을, 레니캣맘님은 이전에도 하신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좀더 길게 하고 싶다.- 우리는 초희를 만난 즉시 연락을 드렸고 캣맘님은 한달음에 와주셨다.


사람 사이의 일이 그렇듯이,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관계를 맺는 것도 인연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물며 변화무쌍한 길생활 동안 어디론가 사라진 고양이를 다시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워낙 예측이 어려운 길고양이들의 삶이기에, 밥 먹던 자리에서 한 번 없어지고 나면 그 주변을 찾아보는 것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다른 곳에서라도 잘 먹고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만 그 자리에 남는다. 그래서 초희를 처음 케어하셨던 레니 캣맘님에게나 우리에게나, 이 재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캣맘님은 천천히 정원을 둘러보셨다. 공간도 고양이에게 친화적이고 아이들끼리 사이도 좋아보인다는 말씀에 우리도 눈빛을 맞추며 동의했다. 초희도 캣맘님을 알아보았는지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그렇게 모처럼 따듯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캣맘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특유의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셨다.


“그런데 여기 아이들, 중성화가 거의 안 되어 있네요.”


캣맘님이 말하신 중성화는 TNR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TNR. 이제는 진에게 거의 일상이 된 일이지만, 경험과 고민이 없던 당시에는 아직 입에도 잘 붙지 않는 말이었다. TNR은 틀을 이용해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Trap)한 뒤에, 중성화 수술(Neuter)을 시행하고, 포획했던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과정을 말한다.* 길고양이들을 불필요한 고통이나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영역 다툼 없이 적절한 개체수를 유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진과 나도 이야기는 계속 들어왔지만 직접 TNR을 해본 적은 없었다. 선배 레니캣맘님께서 능숙하게 TNR 지정 병원에 연락해서 일정을 잡아주셨다. 병원에 가는 김에 치료와 병행하기 위해서 구내염이 있는 노을이와 시내, 그리고 함께있던 초울이를 목표로 삼고 첫 TNR을 준비했다.


고양이와 만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간단한 간식을 주는 것부터 사냥놀이를 하면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것, 주거지 한편에 작은 삭사공간을 내어주는 것,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해주는 것

거기에 중성화 해주는 것도 포함되어야 할까? 일련의 논의를 거쳐 이제는 그게 맞다는 쪽으로 합의가 된 듯하다. 하지만 진과 나는 아직 그런 과정을 거쳐본 적이 없었다. 한 생명체의 생식기능을 제거하고 호르몬 분비에 변화를 주게 한 뒤에 영역 경쟁의 장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일이 정말로 괜찮은 것이었을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일, 혹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약속한 날이 되었다. 우리는 평소 아이들 밥을 주러 가는 5시 즈음 정원으로 모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마치 자기들도 약속 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다 같이 모여있는 건, 처음 정원에서 그 친구들을 만난 뒤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를 보고서도 다들 피하지 않고 얌전히 옆에서 기다려주었다.


먼저 동물병원에서 오신 포획팀 실장님께서 어떻게 포획틀이 작동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셨다. 틀은 철제로 된 사각터널 모양이었고 간식을 먹으러 들어간 고양이가 가장 안쪽의 장치를 밟으면 뒤에서 문이 내려오는 구조였다. 실장님께서 평평한 곳에 틀을 놓아주셨고, 우리는 모두 물러서서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 동안 안전하게 밥을 먹은 기억에 경계심이 풀린 탓이었는지,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고 금세 틀 안으로 들어가 주었다. 포획틀 문이 닫히는 몇 번의 철컥 소리가 정원을 훑고 지나갔고, 어느새 목표했던 고양이들 전부 틀 안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과정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여러 번 TNR을 시도하는 동안에는 생각했던 고양이를 만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만나더라도 틀을 피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의 첫 TNR은 너무 수월했다. 처음이라 한껏 긴장했던 나와 진은 순식간에 벌어진 과정에 약간 무색해졌다.


모든 일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진행되었다. 고양이들은 ‘간단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이제 ‘순조롭게’ 수술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 본성의 일부를 잃은 채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아무 사고도 없었고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어쩐지 진의 얼굴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틀 안에서 놀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진도 놀란 것이었을까?


하지만 진도 진행과정에 별다른 말을 붙이지는 못했고, 나 역시 그녀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래도 길고양이를 위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활동이니까, 다들 괜찮다고 하니까. 그런 말을 되뇌이며 아이들이 틀 안에서 포획 확인사진을 찍히고 차량에 실려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으로부터 폭탄이 날아왔다.



*이때 중성화가 된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 고통을 거의 안 느끼는 귀 한 쪽(주로 왼쪽) 끝을 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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