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일이 많다

캣맘 관찰일기_220323

by 정재광

일이 너무 많다.


일단 어제 동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있었다. 관리실과 몇몇 주민대표는 단지내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장 급식소를 강제철거하거나 길고양이들을 잡아죽일 것 같지는 않지만, 길고양이의 생태, 그리고 인간과의 공존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교환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다는 데에 퍽 절망감이 든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대처방법이 많이 있고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힘없고 말 못하는 존재는 언제든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반대측을 설득하려 여러 자료를 준비한 진에게나, 입주자회의에 참석해주신 아파트 입주 캣맘님들에게나 편치 않은 밤이었다.


진은 오늘도 아침부터 캣맘님들과 통화를 하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상의했다. 진이 정말로 입주민이 되어서 발언권과 행동력을 얻는 방법도 있다. 급식소를 단지내에서 바로 앞 시유지로 살짝 옮기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 급식소를 함부로 철거한다면 재물손괴를 비롯해 법적으로 다툴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도 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 목소리만 있는 줄 안다.


진은 길고양이들 구조 및 입양홍보 하시는 다른 캣맘 두 분과 점심을 함께했다. 서로 신세도 지고 고마운 일도 있고 나이대도 비슷하고, 나눌 얘기가 많았을 것이다. 진이 운영하는 임보처에 같이 가서 고양이들도 만난 모양이다. 짝짝꿍해서 큰일을 벌일까봐 불안하다.


진이 곧 이사가는 집에 나도 같이 갔다. 거기서 혼자 잠시 지내고 있는 노령 고양이 구슬이의 격리장을 조금 넓히는 작업을 했다. 격리장 재료를 사는 과정에서 내가 짜증을 냈고 진도 그걸 알아챘지만 큰 다툼없이 파도를 넘었다. 우리가 이제 이 정도는 넘겨낸다는 게 대견하다. 덩달아 짜증을 내지 않고 상황을 진단해 대화의 문고를 튼 진이 훌륭하다. 집에 가서는 작업을 각자 나누어서 했는데 그것도 너무 꿀이었다. 모든 일을 꼭 같이 할 필요는 없다. 마무리는 함께했다. 참 재미있었다.


돌아와서 나 혼자 동네 밥자리를 도는데 예의 그 아파트 단지내 급식소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이전처럼 박살내거나 철거경고장이 붙은 게 아니라,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이렇게 나온다는 거군. 우리도 대책은 충분히 많이 있다. 짜증나서 그렇지.


일이 너무 많다. 길고양이 세계에서는 어디든 매일같이 사건이 쏟아진다. 그것들을 다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나는 캣대디라고 하기엔 아직 어설프다. 진은 캣맘이다. 아주 멋진 캣맘이다. 단어가 많이 오염되어 버렸지만 아직은 대체할 호칭이 마땅하지 않다. 힘없는 생명을 위해서도,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환경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을 자원과 마음을 내어 봉사하는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아니다. 나는 그 몸과 마음을 따라잡기가 아직 힘들다. 와중에 현란한 사건들과 귀한 마음이 매일같이 흘러간다. 그것들을 놔두기가 아쉽고도 아까워 따라잡기를 위한 나날이 기록을 시작한다. 오늘도 너무 힘들었다. 일단 맥주나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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