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관찰일기_220426
땅콩이가 퇴원했다.
삼색마을에서 처음 만날 날부터 우리를 보고 쪼르르 달려 나왔던 땅콩이. 성격도 활달하고 사람 손을 잘 타서 다른 아이들 TNR을 진행할 때 따로 입양을 보내줄 생각으로 데려왔었다. 물론 그전에 중성화도 시킬 예정이었고. 그런데 잠시 임보하는 동안에 허피스를 좀 앓았고 그것 때문에 병원에 데려갔다가, 땅콩이가 임신 중이라는 걸 알았다.
다소 충격이었다. 4,5개월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작은 체구라 우리는 아직 발정이 오지 않았겠거니 했었다. 그 자그마한 몸으로 임신이라니. 선생님 말씀을 듣고 검사 결과를 접하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그제야 살짝 통통하고 싶었던 아이의 배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허피스 때문에 기침과 콧물을 뱉어내는 땅콩이를 보니 더 안쓰러웠다.
주변 캣맘분들은 수술을 강력히 권하셨다. 길에서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양이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라고, 여러 캣맘들 사이에서는 일련의 고민 끝에 아프지만 정리된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은 반드시 그런가 하는 생각을 접기가 힘들었다. 생명이 잉태되고 또 빛을 본다는 게 그렇게 막아야만 하는 일일까. 물론 산모인 땅콩이와 새끼들의 건강을 비롯해서 걱정해야 할 부분은 많았다. 태어난 아이들 입양처도 하나하나 구해야 했고, 그러자면 먼저 입양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늦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체로서의 땅콩이가 이 한 번의 출산 정도는 자연스럽게 원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진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건 진의 자연관도 반영된 것일 테고, 출산에 대해 진 본인이 갖는 마음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도 -길고양이 생태계와 입양 및 돌봄의 문제를 잠시 떠나- 땅콩이만 바라본다면 출산을 돕는 게 맞지 않겠냐는 소견도 주셨다.
깊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수술을 받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임신기간은 짧았던 것 같다는 말씀도 들었고, 무엇보다 작은 체구의 땅콩이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꽤 힘들게 겪은 허피스 병력이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고려되었다. 다행히 수술 후에 경과도 좋았고, 오늘 집으로 돌아와 편히 휴식을 취했다.
길가의 아기 고양이를 사람이 한 번 만지기만 해도, 변해버린 냄새 때문에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간의 그 작은 개입마저도 그러한데, 하물며 생명과 직결된 문제는 어떨까. 고양이 입장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일이라도 자연계에 인위적인 작업을 가할 때는 항상 저어하게 된다. 이제는 땅콩이를 잘 돌보는 것만 생각하자고 마음먹어보지만, 오늘 밤은 무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