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 산의 이삭
사람들은 창세기 22장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의 믿음만 칭송한다. ‘아들까지 바치는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는 설교는 하도 많이 들어서 설교 본문만 읽어도 무슨 말씀하실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욥기와 더불어 이 본문만큼 평면적으로 곡해될 소지가 큰 본문도 없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제물이 '제물이 어디있냐'고 묻는 거다. 이건 한 편의 블랙코미디나 잔혹 동화를 보는 기분이다. 이삭의 모습은 너무나 순진해서 오히려 섬뜩하고, 아브라함의 대답은 너무나 진지해서 오히려 눈물겹다. 제물이 자신을 태울 장작을 지고 가다니, 너무 문학적이지 않는가. 자신을 죽이라는 편지를 품고 가는 우리야나 자신을 태울 장작을 싣고 가는 이삭이나 자신을 못박아 매달아 놓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나 모두 자신을 파멸시킬 형틀을 스스로 지고 가는 비극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만약,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면 ‘제물이 어디있습니까?’라는 질문의 의도나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버지, 절 죽이실 작정입니까?’라며 따지거나 ‘아버지 이제 장난은 그만하시죠.’라며 개개는 느낌, 그게 아니라면 ‘아, 제물이 되는 것이 나의 숙명이구나.’라고 수용하는 느낌으로 전환된다.
야셀의 책이나 고대 문헌 기록들은 이삭의 자발성을 부각시켜 믿음의 계보를 더욱 견고하게 이어간다. 죽을 줄 알고도 스스로 제물이 된 사람 - 예수님의 예표라는 것. 하지만 앞장에서 이야기했듯, 너무 상징적이고 모범적이라 오히려 반감이 든다.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 또한 아들의 운명을 아들에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다. 먼저는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짐을 이삭에게 맡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썼듯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는 사흘 간의 여정 내내 얼마나 많은 갈등과 유혹과 타협의 시간을 겪었겠는가. 그런데, 이삭에게 ‘네가 재물이 되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준다면 도망쳐서 살 것인지, 순종하여 죽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주체는 이삭이 되는 것이다. 제사, 제물의 비밀을 말하는 순간, 아브라함은 시험에 낙제한 것이고 이삭의 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면으로 보아도 아들에게 못할 짓 아닌가. 우리가 하루하루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 우리의 종말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천년만년 살 것처럼 희희낙락 살아가는 자신이 때로는 한심하기도 하지만, 내가 죽을 날을 알게 된다면 - 그날까지 카운트다운을 하며 불안과 공포 속에 살게 되지 않겠나. 죽음을 예언받아 식음을 전폐하다 비틀거리며 최후의 전장으로 나선 사울왕이나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사형수 최후의 날’을 보면 종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엄청난 재앙이다.
사라의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90세에 이삭이 태어났고 사라가 죽을 때에 이삭은 37세, 이 사건은 사라가 죽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면 37세 이전의 젊은이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신체적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많은 사람들이 이삭의 자발적인 순종을 주장한다. 실제로 “요세푸스”에서는 25세로 나타나는데 후대에 나오는 문헌일수록 나이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또한 이삭의 자발성을 강조하여 이삭의 헌신을 돋을새김하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윤리적 책임을 경감하는 의도가 아닐까 한다.
이삭은 자신을 해치려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달아날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제물이 되는 것은 자발적인 의지였으며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모든 순교자의 모형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흔히 오해하기 쉽겠지만, 아브라함은 점잖고 유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법천지의 고대 사막을 헤쳐온 탐험가이자, 318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적군을 야습하여 포로를 구출한 특수부대의 지휘관이었다. 그런 백전노장의 아브라함에게 애송이 아들 하나 제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광야에서 잔뼈가 굵은 유목민이라면 사지를 순식간에 결박하여 멱을 따는 일을 몇 번이나 해 보았겠나. 그는 다른 계산을 하지 않고 정확하게 기회를 잡아 강하게 포박하여 간결하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삭이 패닉에 빠졌다는 설을 들 수 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일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제단을 쌓고 있는 이삭의 뒤에서 포박줄을 묶을 때, 이삭은 ‘어? 아버지가 뭘하시지?’ 하는 생각으로 저항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손에 들린 칼을 보았을 때에는 이미 포박되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삭은 저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항하지 못한 것이 더 가깝지 않을까.
이것은 해석일 뿐이고, 성경은 답답할만큼 이삭의 심리나 반응에 대해 침묵한다. 입다의 딸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서 한 달 동안 명산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운명을 수용했는데, 이삭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다. 성경이 이삭의 반응에 대한 기록을 생략한 것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시험이 누구를 시험하는 제사인지’를 생각한다면 이삭의 자발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삭에게 ‘순종하고 죽을래, 불순종하고 살래?’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바칠 수 있는가?’를 묻는 시험이지 않은가.
아브라함이야 자신의 믿음으로 순종한 것이었지만, 이삭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이건 이삭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지만 그 순종의 대가로 ‘부자 관계’는 파탄 났다.
우선은 사라의 장례 과정에서 이삭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땅 한 뙈기 없던 입장에서 땅을 구입하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족장이 나서야 했기에 이삭의 역할은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상주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개운치 않았다.
그것까지는 억측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가 있는) 브엘라해로이를 떠나 서 남쪽 네게브 지방에 살고 있었다(창24:62)는 것은 부자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으로 읽힌다. 다른 이유(재산 증식 등)로 분가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부자가 같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이삭이 장가를 간 후인지, 그 전인지 모르겠으나 -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후처로 들여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6명이나. 아니, 사라 사후라면 아브라함의 나이 137세가 넘었을텐데 어르신이 그만큼 강건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곧 손주도 태어날텐데 늦둥이를 그렇게 보느냔 말이지. 심지어 나중에는 이스마엘처럼 자기 집에서 쫓아보낼 거면서 새장가를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예전에는 아브라함은 노년에도 성욕이 왕성했고, 사라의 드센 기질에 눌려 있다가 사라의 사후에 해방감에 첩을 들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밀한 인간관계가 부족하면 성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는 점에서 아들이 없는 외로움과도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고든 맥도널드는 ‘성적인 충동은 남자가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성적인 유혹을 통제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다른 남자들과 더불어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것’이라 충고한다. (고든 맥도날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IVP ) 고든 맥도널드의 진단대로,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아브라함은 아내마저 떠나자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래고자 젊은 아내를 얻어 위로를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는 이삭을 향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삼십 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여섯 아들을 낳으면서도 그에게 아들은 ‘이삭’ 하나였다. 자신의 모든 재산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어갈 유일한 아들이었다. 오히려 다른 아들은 언약의 승계에 방해 요소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서자들을 모두 독립시켜 버린다. 말이 좋아 독립이지, 이삭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father)이 되는 길의 종착지에 이른다. 그 길을 걷는 것은 전체적으로는 성공적적인 신앙의 여정이었지만, 그 여정에서 아내를 권력자에게 양도했고 첩과 서자를 광야로 쫓아보냈으며 어렵게 얻은 적자까지 죽일 뻔했다. 늘그막에 얻은 후처의 자식들도 모두 떠나보내며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떨어져 살았던(것으로 추정되는) 이삭이,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돌아온다. 그것도 배다른 형, 쫓겨났던 이스마엘과 함께. 상처받은 두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만난 상황이다.
아브라함이 살아있는 동안 두 아들은 철저히 차별당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적자로 모든 유산의 상속자였을 뿐 아니라, 금지옥엽과 같은 약속의 아들이었다. 그에 비해 이스마엘은 여종의 아들인 서자였으며, 이삭과 함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는 - 환영받지 못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 차별과 갈등은 일시적으로 정지된다. 아브라함이라는 거대한 그늘이 사라지자, 남겨진 두 아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같은 아버지를 잃은 상주로서 바라보게 되었을 거다. 이스마엘이 원망을 품고 장례식에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기꺼이 와서 이삭과 함께 섰다는 것은 그가 사막에서 꽤 괜찮은 대인배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장례식날, 가족들이 모여 망자로부터, 또는 망자 때문에 받았던 상처와 서러움이 폭발한다. 그럼에도 장례 의식을 함께 치르는 과정에서, 이들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남긴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 사람이 떠나는 장례식은 슬픔의 행렬이 아니라 망자는 편안히 떠나고 남은 자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축제’가 되는 것이다.
반면, 아버지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생명이 위협 받았던 이삭 또한 짙은 그늘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언제 또 칼을 들어 자신을 칠 지도 모르기에 그는 아버지 곁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든 다시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그동안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너무나 거대한 믿음의 조상이었고 신의 선택을 받은 자였다. 하지만 숨을 거둔 아브라함은 그저 늙고 작은 노인일 뿐이었다. 그제야 이삭은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실수도 하고 고뇌도 했던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를 기억 속에서 부활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죽음이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려 주었기에 비로소 아들이 아버지를 품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 일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두 소설에 아브라함의 장례 장면을 겹쳐서 그려보았다. 한창 반항기 많았을 열서너 살에 광야로 쫓겨났을 이스마엘의 분노와 서글픔, 아버지의 칼에 죽다 살아났을 이삭의 트라우마가 아브라함의 장례식에서 좀 치유되었을까. 성경에서는 한 구절로 지나가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아브라함이라는 거인이 치른 신앙의 비싼 수업료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