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모세는 하극상에 대해 왜 엎드렸는가?

치밀한 하나님의 정치, 엎드리는 모세의 온유

by 이진석

이집트에서 배운 정치와 다른 광야의 정치 환경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서 40년간 정치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광야는 이집트에서 배운 정치학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10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의 감격은 불과 사흘을 가지 못했다. 마라의 쓴 물,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그리고 금송아지 사건을 거치며 모세의 권위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다. 백성들에게 모세는 ‘구원자’인 동시에, 자신들을 광야로 끌고 와 고생시키는 ‘원망의 대상’이었으며 엄격한 종교 계율로 억압하는 ‘폭압자’였다. 특히, 가데스바네아의 회군 결정은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혔고,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하고 있었다.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의 폭발

그러던 중, 민수기 15장에서 방아쇠가 당겨진다. 안식일에 나무를 하던 사람을 돌로 쳐 죽이는 처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 사건은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엄숙하게 지키라는 경고의 메시지였지만, 이미 불만이 가득 찬 백성들에게는 공포와 반발심이 폭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니냐?’는 억눌린 불만은 16장에서 고라와 다단이 불만 세력을 규합하여 대드는 사건으로 폭발한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민수기 16:1-3)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들의 출신이다. 고라는 레위 지파, 즉 종교 권력 내부의 불만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들의 진짜 불만은,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며 회중을 대신하여 섬기는 일을 작은 일로 여긴 것 (민수기 16:9)’이며 명분은 ‘회중이 다 거룩한데 너희(아론 반차)만 왜 스스로 높이느냐’는 제사장 직분의 독점을 문제 삼으며, 그 자리를 탐냈다.

그에 비해 다단과 아비람은 장자(르우벤) 지파로서 정치적 지분을 요구했다. 즉, 정치적 왕권 계승은 맏이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명분이다.

요약하면, "모세-아론 체제의 집중된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단순한 ‘권위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대안 권력을 세우려는 쿠데타였다.


권위를 세우시는 방식; 사울의 방식 vs 모세의 방식

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의 권위를 세우시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사울은 이미 왕으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그의 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사람들 앞에 증명하기 위해 제비뽑기라는 공정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모든 지파를 가까이 불러, 베냐민 지파를 뽑고, 마드리의 가족을 뽑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뽑는 순으로 아래에서부터 정당성을 확보해가는 방식을 취하셨다.

그러나 모세의 권위는 철저히 ‘중심에서 외부로’ 확립된다. 하나님은 외부의 적을 치기 전에, 모세의 아내 출신 문제를 계기로 가장 가까운 혈육인 미리암과 아론을 먼저 징계하셨다.(민12장) 그리고 오늘의 사건인 레위 지파 내부의 문제를 정화하시고 (민16장) 마지막으로 아론의 지팡이에 꽃을 피우시면서(민17장) 12지파 전체의 질서를 잡으셨다.

이는 ‘내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원천 봉쇄하는 도덕적 명분을 확보하고, 안으로부터의 결속을 다지며 외연을 확대해 가는 놀라는 정치적 기술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는 차갑고 비정한 정치공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소로부터 나온 것임을 확증하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계(병)를 통해 교만을 꺾으시고, 때로는 회복(약)을 통해 언약을 확증하시며 질서를 바로잡으셨다.


도전에 응하는 태도;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자

이런 거대한 도전 앞에서 모세의 태도는 충격적이다. 정치적인 셈법에 능한 지도자라면 자신의 정당성을 설파하거나, 반대파를 제압할 명분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라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세는 250명의 지휘관 앞에서 가장 먼저 ‘엎드렸다’(민 16:4). 250명의 지도자가 떼로 몰려왔을 때, 모세는 정치적인 수완이나 논리로 설득할 단계가 지났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지도자가 ‘엎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절을 하는 게 아니라 ‘판단의 주체를 이양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 엎드림은 ‘내 손을 떠났다’는 항복 선언이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판단해 주시라’는 절박한 구조요청 신호였다.

또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지(Ego)’를 내려놓은 행동이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지도자가 되었 듯, 하나님의 뜻이라면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자기 부인’의 과정이었다. 이런 모세의 마음을 진 에드워드는 ‘세 왕 이야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다윗이여, 만민의 왕이신 당신은 아십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만이 그를 이스라엘 위에 세우신 분임을 알았지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 253명이 왕국을 차지하던가, 아니면 하나님게서 모세의 정당함을 입증하시던가. 모세는 그것을 알았지요.” (진 에드워드. 세 왕 이야기)


모세의 기준은 명확했다. 하나님이 모욕당할 때 그는,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레위인을 시켜 칼을 휘둘렀으며 비느하스의 창을 칭찬했다. 하지만, 아내를 빌미로 비방할 때, 자신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고라의 반역에 대해서는 조용히 얼굴을 땅에 묻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보여준 '온유함'의 실체이다.


참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처음 민수기 12장~16장을 묵상하며 권위를 확립해 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정치 공학에 감탄했다. 어느 정치인도 보여주기 힘든 세련되고 치밀한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민수기가 보여주는 권위의 확립 과정은 차가운 정치 공학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권력의 칼자루를 맡기셨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는 동기를 살폈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손에 넘겨드렸다. 그에 비해, 모세의 권위와 지위를 문제 삼은 이들은 ‘정의’를 가장한 ‘권력욕’과 ‘탐욕’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내 안의 '시기심'을 경계해야 하고, 권위를 가진 자는 내 안의 '특권 의식'을 경계하며 엎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한 태도는 '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성찰'뿐임을 모세의 무릎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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