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구스 여인, 그리고 미리암
민수기 12장부터 17장까지를 읽었다. 다 아는(? 실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였지만, 오늘은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아사리 난장판이었다. 원래, 막장이 재미있는 법 아닌가. 모세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짐작이 되면서도 의아하기도 하고 불편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바로 12장,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한 이야기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와서 아내로 삼았다. 미리암과 아론이 거기에 대해 비방을 했고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의 형벌을 내리신다는 이야기이다.
대개 이 본문은 ‘주의 종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절대 대적하면 벌을 받는다’는 설교의 소재가 되고는 한다. 그런 설교를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넘겼지만, 늘 생선 가시 목에 걸린 것처럼 개운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시점에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미리암이 아니라, 모세가 아닌가.
모세가 이방인 여자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부적절하다. 첫째, 그는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첩으로 얻었다. 둘째, 그 여자가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구스 출신의 이방인 여자라는 점이다. 민수기 25장에는 비느하스가 미디안 여인과 간음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죽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방 여인과의 행음을 그렇게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지도자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합당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비느하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미리암도 모세를 찔러 죽여도 할 말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왜 모세가 아니라 미리암을 벌하시는 것인가. 그래놓고 모세는 자신에 대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자’라고 말하니 이런 독재자의 유체이탈식 화법은 또 뭐란 말인가.
지금도 고위공직자를 임명하기에 앞서 납세, 부동산, 재산 내역, 병역, 자녀 등 전방위적인 검증을 받지 않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도자의 윤리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주의 종’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입 다물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오늘 성경을 읽는 김에 하나님이 왜 모세가 아니라, 미리암을 벌하셨는지 묵상해 보았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는 폐쇄적인 혈연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수많은 ‘잡족’들이 있었고 (출 12:38) 이는 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동화되어 살아갔다. 오히려 요즘에는 '히브리인'이라는 민족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가설을 많이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순수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이집트에 노예 생활을 하던 팔레스타인 출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있으면 이방인들도 차별받지 않았다. 열왕기상 8장에는 솔로몬이 성전 낙헌제에서 이렇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결국, 이방인들도 성전- ‘이방인의 뜰’까지로 한정되긴 하지만 -에서 기도했다는 얘기다.
다윗의 충신 우리야도 이방인이었다. 입신양명의 길이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예수님의 족보에도 가나안 여인(라합)과 모압 여인(룻)이 올라가 있지 않은가. 제사장은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와 결혼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으나(레위기 21:14) 모세는 제사장이 아니었기에 이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따라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 자체는 법적으로 잘못은 아니다. 다만, 모세가 첩을, 그것도 이방여인을 첩으로 들이는 것은 도의적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먼저, 고대사회에서는 남자가 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것이 흔한 일이었는데 모세가 첩을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냐, 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아브라함은 후처인 그두라를 빼고서라도 하갈이라는 여종을 첩으로 두었다. 야곱은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을 두었고, 다윗은 미갈, 아비가일, 아비노암,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밧세바까지 수많은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솔로몬은 공인된 부인만 1,000명이었다.
하지만,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시대였다고 해도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둘’이 한 몸이 되는 일부일처였다. (혼인예식의 단골 본문 창세기 2장 24절을 보라.) 더구나 거룩한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이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성결’을 요구하셨기에 첩을 두는 행위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모세가 첩을 두었다면 이를 비난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첩’은 정식 혼인 관계를 맺지 않고 데리고 사는 여자를 의미한다. 구스 여인이 첩이 아니라 아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십보라가 죽은 경우이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십보라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이야기가 없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후 장인 이드로가 십보라와 아들들을 데려다 준 이후, 성경은 십보라의 행적에 대해 침묵한다. 만약, 이 시기에 모세가 홀아비가 되고 구스 여인을 맞아들였다면 이 혼인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 당시 십보라가 죽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으니 가능성으로만 남겨두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 마치, 모세가 어디 가서 구스 여자를 새로 데려왔다는 어감으로 들린다. 하지만, NIV로 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Miriam and Aaron began to talk against Moses because of his Cushite wife, for he had married a Cushite. 미리암과 아론이 문제 삼은 것은 모세가 이방여인을 첩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방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성경에서 ‘구스’라는 단어는 대체로 에티오피아로 간주된다. 하지만 학자들은 구스를 지금의 에티오피아보다 훨씬 넓은 지역과 다양한 인종을 지칭하는 낱말로 보고 있다. 특히 하박국 (3:7)을 보면, 구스와 미디안을 병치하는 것을 근거로 구스를 홍해 서편의 미디안을 포함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히브리인이 그러했듯) 미디안 또한 특정한 한 종족을 의미하지 않고 비슷한 특징을 가진 여러 족속에 대한 통합적 명칭이라는 설명이다. 이 경우, 모세의 아내 구스 여자는 앞서 미디안 여인이었던 십보라와 동일시 될 수 있다.
여담이지만, 미리암이 나병에 걸려 피부가 하얗게 된 것은 미리암이 구스 여인의 검은 피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 네 피부는 얼마나 흰가 보자.’ 하나님식의 아재 개그랄까. 예전에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왜 십보라를 저렇게 가무잡잡하게 표현했을까 생각했는데 이 가설이 맞다면 꽤 근거있는 묘사라 하겠다.
그러면, ‘40년도 넘은 혼인 관계에 대해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이드로와 십보라의 합류 시기를 살펴보면 간단히 답이 나온다. 출애굽기 18장이니 출애굽 후 시내산 도착 바로 직전이다. 시내산에서 체류한 기간은 1년 정도였고 시내산을 출발하고도 1년 후에 미리암이 문제제기를 했으니 올케를 만난 지 2년 후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이다. 이것을 아침 드라마식의 시누이와 올케 간 갈등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드로와 십보라가 합류했을 때로 돌아가보자 이드로는 모세에게 10진법 단위의 행정, 사법 조직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드로는 바로 이스라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아들 - 그러니까 모세의 처남 호밥이 모세 곁에 남아 길잡이 역할을 한다. (민수기 10:29-32) 이쯤 되니 그들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미리암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갓난쟁이 모세가 죽을 위기에서 기지로 모세를 살린 것은 미리암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자 그의 곁에서 이스라엘의 여선지자 역할을 하며 구속 사역에 참여한다. 평생 그의 전 생을 이스라엘 공동체에 헌신해 온 사람이다.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모세의 처가가 관여하기 시작한다. 미리암은 자신이 배제되는 소외감, 나아가 모세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유대인 뿐 아니라 수많은 족속들이 뒤섞여 있었기에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발현된 측면이 있다. 마치, 다문화사회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이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핑계로 일자리를 위협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하겠다.
미리암의 이러한 소외감에 100% 공감하더라도 마냥 변호를 해 줄 수 없는 것이 -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12장 전후로 읽어가다보면 이 무렵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가 걸린 중차대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수백 년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의 입구 -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다. 새 땅을 향한 기대와 아직 만나지 못한 적들에 대한 염려로 백성들 가운데에는 긴장감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미리암은 모세의 지도력에 균열을 일으켜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동력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동기도 불순했지만, 그 시점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데에는 이러한 갈등이 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던 이유도 있었다. 열 정탐꾼이 단순히 사실을 잘못 전달했다거나, 자신들의 자아상이 형편없었다고 비난할 수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들은 이미 모세의 지도력과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믿음이 바닥났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 땅에 떨어졌다. 급기야 2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모세에게 대든다.
모세의 지도력은 이전에도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매장지가 없더냐,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하지 않았냐, 빵을 달라, 우리를 굶겨 죽이려느냐, 목말라 죽겠다 등 앞에서부터 다시 읽으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세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발을 뻗고 잠을 자지 못했으리라. 내가 모세였다면,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진즉에 그만두고 도망갔을 것 같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가 지도자가 되기를 그렇게 개갰던(?) 것은 그 무게를 알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으로 끊임없이 보증해 주셨어도 모세의 지도력은 정말 종잇장처럼 얇고 위태위태한 것이었다. 그런 모세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런 시점에서 첩질을 한다고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리해 보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한 것은 결국, 모세의 윤리적 허물 때문이 아니었다. 새로 태동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새로운 조직 개편 그리고 은밀하게 벌어지는 사적 권위 다툼 문제 등 복잡한 갈등요인들이 얽힌 상황에서 미리암은 모세가 이방여인을 아내로 데리고 있는 것을 문제 삼은 것 뿐이었다. 질투에 가려진 자기 의분과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자기 열심이 외형적 표준을 도구로 해서 타인을 공격하는 것.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모세의 약점을 잡고 ‘권력지분을 요구’하는 탄핵이었던 것이다. 결국, 미리암에게 임한 나병은 위임된 권위에 불순한 동기로 도전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