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에 생색을 섞지 않는다는
우리 학년에는 나보다 약간 어린, 여선생님들의 맏언니 격인 선생님이 계신다. 그 선생님은 늘 말없이 채워주는 사람이다. 연구실 간식함이 비면 어느새 채워져 있고, 여름이면 냉장고에는 시원한 얼음컵이 가지런히 들어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쓰레기통이 비워지고 탁자 위도 정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한 번도 그런 일에 대해 생색을 내신 적이 없다. 누가 물으면 그냥 웃으며 말끝을 흐린다.
"아휴, 그냥... 지나가다 보이길래요."
말하자면, 어른의 손길은 때로 '보이지 않아야 더 어른스럽다'.
시골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는 1학년과 3학년 복식 학급을 맡고 있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아이가 하나 있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1학년 꼬맹이. 어느덧 11월 말, 겨울이 깊어가는 날인데도 얇은 홑잠바 하나 걸치고 학교에 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저려왔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말없이 마트로 향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맞는 겨울 점퍼와 내의, 목도리를 준비해 주었다. 다음날, 나는 스쿨버스 대신 내 차로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아내가 골라준 옷을 건넸다. 그 아이는 다음날부터 그 옷을 입고 다녔다. 겨울 내내 따뜻하게 학교에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서는 '고맙다'는 인사가 한마디도 없었다. 나는 괜히 억울한 마음에 아버지께 투덜거렸다.
“인사도 안 하더라구요.”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면 인사도 못하는 법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쓱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내의 따뜻한 마음에 괜히 조건을 단 셈이었다.
"내가 준 것에 감사해줘야 해."
"적어도 알아줘야지."
그 마음은 '주는 마음'이 아니라 '받을 마음'이었다. 요즘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보다 ‘보여지는 손’, ‘기록되는 손’에 더 익숙하다. 봉사도, 기부도, 선행도 SNS에 올려야만 존재감을 갖는 시대.
하지만 진짜 어른은 받을 기대 없이 주는 사람이다. 칭찬을 바라지 않고도 손을 내밀며, 고마움을 확인하지 않고도 마음을 건넨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뒷모습에 스며들고도 말없이 물러서는 품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