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내 그릇의 깊이를 알기

내가 감당할 몫과 감당하지 말아야 할 몫 사이에서

by 이진석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기

앞선 장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악역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타인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 옳은 양, 내가 최고인 양 착각하고 나대다(?) 보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악역을 자처할 때에도, 자신의 그릇의 깊이를 알고 나서야 한다.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내가 감당할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늘 되물으며 행동해야 한다. 나는 학교의 관리자도 아니고, 결정권자도 아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단지 ‘n분의 1’에 해당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렇기에 책임의 주체에게 권한을 넘기고, 그 결정에 따라야 할 때도 있다.


내 일이 아닌 것에 나서기

예전에 안동에서 근무할 때, 우리 학년부장 선생님 반의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은 적이 있었다. 학교는 부장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했고, 부장 선생님은 나에게 하소연했다. 나는 ‘내가 해결해 보겠다’며 직접 나서서 그 학부모에게 사과하고 설득했고, 결국 일을 수습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게 과연 내가 나서야 할 일이었을까? ‘왜 그렇게 해결했냐’는 말이 아니라, ‘내가 뭔데 그랬냐’는 질문이 나를 멈춰 세운다. 그건 내 책임도 아니었고, 내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자격도 없었다.

요즘도 비슷한 일들을 한다. 다른 반 수업에 참관을 가기도 하고, 신규 교사에게 제안을 하기도 한다. 물론 허락을 받지만, 그 허락의 진심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부장이 하라니 마지못해 한 것’일 수도 있다.

한 번은 같은 차시 수업을 여러 반에서 시도하며 내용과 흐름을 다듬은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이 좋아서 옆 반 신규 선생님에게도 해보라 권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또 다른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싫다고 하세요.”

웃자고 한 말이었고, 나도 웃었다. 하지만 돌아서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나섰나?’ 그렇다. 내까짓게 뭐라고.


남의 인생에 훈수질은 그만

내가 좋아하는 만화 『미생』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장그래가 다른 직원을 도와 거래처의 문제를 밝혀내자, 그 직원이 회사 감사팀에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선다. 장그래는 그에게 “책임지지 마세요.”라고 조언하지만 그 직원은 장그래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맞선다.

징계를 자처한 그를 보며 장그래는 이렇게 독백한다.
“내가 뭔데, 다른 사람 인생에 비루하게 훈수질이냐.”

교사는 직업의 특성상 남의 인생에 훈수질하기 쉬운 사람이다. 늘 가르쳐야 하고, 조언해야 하며, 개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재촉하지 말아야 할 달팽이를 재촉하고, 흐르게 두어야 할 강물에 방향을 정해주려 든다.

하지만 정작 싸움터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훈수가 아니라, 응원이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남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하고 결정을 종용하는 사람이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사람이냐.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한 사람의 몫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 내가 책임져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나서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자제 속에서 내 그릇의 깊이를 아는 것.

그것이, 어른의 또 하나의 징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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