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흩어지는 그림자에 인사하기

좋았던 인연을, 고이 놓아줄 줄 아는 마음

by 이진석

나는 한 학교에 오래 머무는 걸 선호한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설렘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이 더 좋다. 하지만 오래 정든 학교를 떠난 후, 그곳에서 맺은 인연들을 굳이 돌아보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는, 매정한 선생이다.

그런 나에게도 조금 특별했던 학교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는 6학년을 2년 동안 맡았고, 연구부장을 하며 교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바쁘고 고된 나날들이었지만, 없는 일을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치러내며, 동료들과 서로 생일을 챙기고 여행 갈 땐 몇 푼 안 되는 노자도 건네며 서로를 응원하고 도와주던, 고맙고 그리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난 뒤에도 몇 해 동안은 연 1~2회씩 만나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잊어갔다. 이제는 SNS로 안부를 전하는 정도.
어느 해,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우리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걸 느꼈다. 마치, 오랜만에 재회한 연인이 서로 간의 간극을 깨닫고는 이별을 직감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지금 나는 다시, 좋은 인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바쁜 나를 묵묵히 도와주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가 “수업 공개 해봅시다”, “이 프로젝트 해볼까요?”라며 일을 벌일 때마다 불평보다는 격려가 돌아온다.
가끔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내년에도 같이 하실래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느 분은 타시도 교류 신청을 하실 것이고, 어느 분은 지역 근무 기간이 끝나 타지역으로 떠나실 것이다. 내년에도 함께하더라도, 올해만큼 좋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좋았던 기억은 그 시절에 두는 것이 오히려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에 이런 구절이 있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에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모든 관계는 흘러간다. 우리의 존재가 그러하듯, 어떤 인연도 영원하지 않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명한 문구도, 이제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왜, 사랑은 변할 수도 있지.”
그리고 사랑이 변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덜 소중했던 건 아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지나간 인연을 놓아줄 줄 아는 것. 함께한 날들을 애틋하게 가슴에 품되 떠나는 이를 붙잡지 않는 것.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렇다. 영원한 이별 앞에서도, 그 사람과의 추억을 기억의 가장 따뜻한 방에 잘 놓아두고, 내 남은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 그게 진짜 어른의 애도가 아닐까.


흩어지는 그림자에게 미련 대신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것.

그것이 어른이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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