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축소된 조건으로 협상한 이유는?

협상의 기술

by 이진석

출애굽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손 꼽히는 ‘역대급’ 장면이다. 어린 시절의 휴먼 드라마와 바로와의 협상이 펼쳐지는 정치 드라마를 거쳐, 홍해를 건너는 순간에는 블록버스터가 되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 수없이 많은 작품에서 인용되고 재해석되었다. 그래서 나의 해석이나 묵상 또한 바다에 물 한 컵 붓는 행위밖에 되지 않겠지만 - 나는 단 한 가지 포인트에만 집중하여 묵상할 생각이다. 바로 - 하나님은 히브리인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킬 생각이었으면서 왜, 사흘길 쯤 광야로 가도록 협상을 시켰느냐?는 거다.

먼저, 본문을 찾아보자.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출3:18)” “So please let us take a three-day journey into the wilderness to offer sacrifices to the LORD, our God.' (Exodus 3:18, NLT)

대학생 시절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이런 구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흔히, ‘십계’나 ‘이집트 왕자’에서는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 ‘우리 민족을 놓아주라’고 협상했다고 나오지만 - 실은, 이렇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조건으로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대한 우리의 기억력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 군데군데 구멍이 있거나 왜곡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이 사흘길을 걸어나가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게 할 계획이었나? 아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히브리인들이 자유를 얻기 원하셨다. 가나안으로 돌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계획을 모세에게는 밝히셨지만 파라오에게는 다 드러내지 않으셨다. 무엇 때문에 그리하셨나? 왜 거짓 조건으로 협상을 하게 하셨을까, 그것이 내 의문의 시작이었다.


가설1. 하나님은 거짓말로 협상하도록 하셨다?

성경은 거짓말을 정당화 하진 않는다. 오히려 ‘서로 거짓말 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다. 성경에서 ‘거짓’이라는 말만 검색해 보아도 성경이 얼마나 거짓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서 거짓 협상을 하고, 다윗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아히멜렉에게 ‘사울 왕의 비밀 임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짓말로 협상하라고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요청은 솔직히, ‘거짓말’이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모세가 ‘사흘길 쯤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고만 했지,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맹세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의도적 모호함’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짓을 말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단지 ‘지금 당장 필요한 첫 번째 스텝’만을 말하게 하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교무실로 잠깐 와라"고 했을 때, 혼내기 위해 부르는 것인지 칭찬하려고 부르는 것인지 다 말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 정보의 비대칭이 곧 거짓말은 아니다.


가설2. 조건부 협상에서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을 설계하셨다.

그런가 하면, 사흘 길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겠다는 요구에 응하면 - 원래의 요구를 말할 것이라는 거다. 이 경우,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거짓 제안’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는 종교적 제사를 위해 단기간 외출을 요청하는 것이 이례적인 요구가 아니었을 수 있다. 즉, “사흘길 제사” 요청은 애초에 전면 탈출을 위한 직접적 도발이 아니라, 정치적·외교적 긴장을 줄이고, 대화의 문을 여는 전략적 요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설3. 파라오의 완악함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자칫, 내러티브에 빠져 ‘며칠 동안’, ‘누가’, ‘무엇을 갖고’ 가느냐는 디테일을 두고 싸우는 ‘노사 협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협상의 본질은 '누가 진짜 신인가?'의 싸움이다.

당시 파라오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런데 모세가 와서 "히브리의 하나님 여호와가 명령했다"고 하니 파라오 입장에서 '보내주는 것'은 노동력 손실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신적 권위가 여호와라는 신 아래에 있음을 인정하는 굴복으로 여겨진 거다. 따라서 '3일'이든 '영원히'든 기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파라오에게는 단 하루라도 자신의 허락 없이 여호와를 섬기러 가는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던 것이었다.

고대 외교 문서나 화법에서, 작은 요구를 통해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당한 외교적 절차였다. 만약 파라오가 '3일간의 제사'라는 (비교적 들어줄 만한) 작은 요구조차 거절한다면, '영구적인 해방'이라는 큰 요구는 꺼낼 필요도 없이 거절당할 것임이 뻔할 거란 얘기다.

하나님은 이미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질 것을 알고 계셨다. 작은 요청조차 허락하지 않는 파라오의 모습을 통해 그의 악함과 억압의 정당성 부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이 협상이 사용되었다. 성경에서도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제안은 속임수가 아니라 파라오의 완악함을 만천하에 증명하기 위한 지시약이었으며 명분을 쌓기 위한 가장 낮은 단계의 요구였던 것이다. "이것조차 거절했으니, 심판은 정당하다"는.


가설4. 점진적 계시와 인간 자유의 존중

내가 대학생 때 묵상한 내용이다. 실연으로 인해 마음이 힘들 때였는데, 그때 이 구절을 발견했다. 그리고 협상이 계속 될수록 파라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라며 완전히 무시를 하더니 차츰, ‘이 땅에서 제물을 바쳐라(출8:25)’, ‘광야에서 제물을 바치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출8:28)’, ‘광야로 가되, 장정들만 가라.(출10:11)’, ‘광야로 너희 가족들을 다 데리고 다녀오되 양과 소는 남겨놓고 가라(출10:24) 등으로 한걸음씩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이런 협상 과정을 보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 그 아이를 포기하게 하시겠구나. 내 마음에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포기하는 마음이 호떡 뒤집듯이 이리저리 뒤집혀도 결국, 시간이 가면 나도 점차 마음에서 놓으리라는 것을 출애굽기 본문을 통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10가지 재앙을 내리지 않고 바로, 열번째 재앙으로 직행했더라면 아마 파라오는 미처 날뛰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씨를 말려 버렸겠지. ‘사흘 길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는 모세의 요구는 ‘우리를 이 나라에서 나가게 해주시오.’라는 본요구 전에 파라오의 의지를 꺾어놓기 위한 예방 협상이었다.


파국에 이르지 않기를

어쩌면 이 협상은 '거짓말'이나 '이면 계약'이 아니라, 파라오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배려이자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영구 탈출'을 요구했다면 파라오는 고민의 여지 없이 모세를 죽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3일간의 제사'라는, 그나마 파라오가 들어줄 법한 낮은 문턱을 제시하셨다. 마치 내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듯, 파라오에게도 순종을 연습할 가장 쉬운 단계를 주신 셈이다.

그러나 파라오는 그 작은 문턱조차 넘기를 거부했다. 작은 순종조차 거절한 그에게 남은 것은 거대한 심판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사흘길'의 제안은 하나님이 숨긴 '반칙'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를 끝까지 존중하고 기다리신 하나님의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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