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엄마에게서 나던 초록빛 향기

by 서 경

향은 단순한 후각적 자극이 아닌 무언가를 생생하게 연상시켜 주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노래와 같은 청각적인 요소 또한 이런 부류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는데, 노래를 통해 과거로 향하면 그 노래를 많이 들을 당시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던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와 내가 바라보던 시야 정도가 짧은 필름처럼 훅 지나가는 정도에 그친다면, 향은 그걸 넘어서 정말 그 장면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겉표지에 초록색 잎이 그려진 바디로션을 사용하셨다. 그 바디로션의 향은 정말 강했다. 싱그럽고 상큼한 향이 났고 왠지 모르게 초록빛이 느껴지는 향기였다. 엄마는 이 바디로션을 향이 사그라들 때마다 한 번씩 바르셨고 항상 거실 같은 자리에 두시곤 하셨다. 당시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 만져보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 로션 튜브를 하도 만져서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 튜브의 매끈하고도 말랑한 촉감이 기억난다. 자연스레 엄마를 안으면 초록빛 향이 났고 나는 그 향과 함께 나를 뒤덮는 엄마의 부드러운 사랑이 참 좋았다. 그러나 엄마는 언젠가부터 향기로운 이전의 로션 대신 인터넷에서 유명한 무향의 로션을 사용하기 시작하셨고 자연스레 '초록 로션'의 향기도 내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그렇게 내가 그 향을 잊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구석에서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단순히 인터넷에서 본 예쁜 색깔의 립스틱을 사러 들어간 화장품 가게에서 우연히 그 향을 내 기억의 중심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한창 립스틱을 손등에 발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는 은은한 분위기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뭐에 홀린 듯 난 화장품 가게에 온 진짜 목적도 잊은 채 흐릿하게 느껴지는 향을 따라갔다. 향이 날 이끌어준 곳에 다다르니 당시 엄마의 로션 표지에 있던 똑같은 초록색 잎이 그려진 네모난 병의 향수가 있었다. 그 향수를 시향지에 두 번 뿌리고 시향 지를 팔랑팔랑 흔든 순간, 기억의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나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한꺼번에 향과 함께 밀려들어 왔다. 향에서 초록빛이 느껴지는 건 여전했고 예전의 내가 이 향을 맡았을 때의 분위기가 정말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향에 추억이 깃드는 건 참 소중하다. 난 그 소중함을 느낀 후로 고등학교 내내 이 향수를 사서 뿌렸다. 등교 전 설레는 마음으로 뿌리기도 하고, 학교에 가져가 생각날 때마다 뿌리기도 하고, 체육 시간 후 땀 냄새를 가리기 위해 뿌리기도 하고, 방과 후에 약속이 생기면 기분 내려고 뿌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선가 이 향이 나면 나를 아는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어? 어디서 니 향 나는데?"


우리 엄마의 상징이었던 향이 나의 상징으로 이어진 건 날 참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향을 내 일상 속에 흩뿌리며 향 속에 나만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나는 이 향을 통해 미래의 내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도망 올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을, 이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미래의 나를 잠깐 이 순간으로 데려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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