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성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바로 키였다. 나는 신장이 180cm가 넘지 않는 남성은 만나지 않을 정도로 키에 대해 꽤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아무리 잘생겨도 키가 작으면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잘생기기까지 해야 했으니, 그리고 그런 남성이 나를 만나줄 리도 만무했으니, 연애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취향에 맞는 남성을 잘 골라 만나왔다.
이상한 사람들만 줄줄이 꼬였던 때가 있었다. 그놈의 얼굴이 뭐고, 키가 뭔지 외적인 것에만 목을 매던 내가 기어코 끝판왕을 만나고야 말았다. 여자 꼬시는 데에 취미가 있던 남자에게 걸려들어 결국엔 파멸까지 맛보고 나서야 내려놓게 됐던 기억도 있고, 조각상같이 잘생기긴 했으나 키가 작아 피하던 남자에게 지독하게 스토킹을 당했던 기억도 있다.
그 잘생긴 남자에 대해선 할 말이 아주 많다. 내 인생을 망친 나의 구원자. 그를 말하려면 이 한 문장이면 족하긴 하다. 176cm의 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그를 자꾸 밀어냈고 그때부터 환멸날 정도로 시달리게 됐다. 직장도 잘리고 전화번호도 바꾸면서 세상과 멀어지게 될 정도였으니까. 어찌 됐든 연락을 끊어내는 덴 성공했으나 그와 다시 연락한 계기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살 시도로 실패한 후 살려달라며 전화한 것이 화근이었다. 왜 그가 생각났을까. 나를 그렇게 지독하게 괴롭힐 정도면 내가 꽤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었나. 그건 아직도 의문이다.
그 전화는 구조 요청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까웠다.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내가 완전히 사라져도 괜찮은 존재는 아닌지. 그는 전화를 받았고, 울음보다 먼저 나온 건 그의 숨소리였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안도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엮였다. 구원이나 화해 같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저 서로의 최악을 다시 확인하는 쪽으로.
나는 여전히 그의 키를 떠올렸다. 176이라는 숫자가 그를 정의할 리 없는데도, 그 수치 하나가 모든 판단의 핑계가 되었다. 낮춰 보고, 무시하고, 그래서 안전하다고 믿게 만드는 수치.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늘 그 아래에서 숨을 골랐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놓아주지도 않았다. 그 모순이 나를 살게 했다. 어쩌면 나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나의 바닥, 그 바닥에 닿아도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
그래서 나는 아직도 키를 본다. 사람을 재는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이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키부터 쟀다. 취향이라기보다는 습관이었다. 재난을 예감하듯, 또다시 무너질 만한 구조물을 고르기 위해. 사람은 변하지 않지만 기준은 쉽게 변한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이제는 180이든 176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가 전부였다. 그는 여전히 나를 필요로 했다. 아니, 필요하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나를 묶어 두었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늘 가장 먼저 꺼내는 거짓말이었고, 나는 그 거짓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안도했다. 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버리지 못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미련이 나를 살게 했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너무 빈약해서, 차라리 누군가의 집착이 나았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칠 힘이 없었고, 무엇보다 도망치면 내가 완전히 무의미해질 것 같았다. 그는 내 삶의 증거였고, 나를 망가뜨린 유일한 증인이었다. 그래서 그가 전화를 하면 받았고, 부르면 나갔다. 그건 사랑도 중독도 아니었다. 그냥 멸망을 연장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가 정말로 나를 파괴했을까, 아니면 나는 애초에 부서질 준비가 된 상태였을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키를 본다. 사람의 크기를 재는 게 아니라, 내가 다시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