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사랑

by 서립

갑작스레 생긴 술자리에서 '망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망한 사랑은 가망이 없는 사랑을 뜻하는 표현으로 문학에서는 물론이고 요즘은 짤처럼 흔하게 쓰인다. 그것은 평범하지 않게 뒤틀렸고, 겪고 나면 깨달음을 얻어 자아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절대 잊지 못하고 끝없이 회상하게 되고, 아무튼 아름답다고 칭해진다. 나 역시 그런 것들에 대해 종종 생각하며 글을 써왔기 때문에 반가운 소재였다.


망한 사랑이란 게 뭘까?

내가 물었고,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충격적인 말을 했다.


사랑에 망한 게 어딨어.


그 말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을 지나치게 잘 아는 사람의 태도 같았다. 망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그는 사랑을 오래 붙잡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사랑을 실패로 분류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자백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그 단어를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이 망했다는 말은 참 어색하다. 망했다는 건 계획이 있었을 때나 가능한 표현이니까. 사랑은 애초에 설계도가 없다. 출구도 없고, 완공일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난 사랑을 두고 망했다고 말한다. 끝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끝을 견디지 못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은 끝나기 위해 존재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끝을 향해 달려가며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끝나지 않은 사랑은 늘 가능성으로 남아 흐릿하지만, 끝난 사랑은 선명하다. 상처의 모양으로, 후회의 문장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그래서 나는 이제 망한 사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랑은 망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가본 사랑만이 완성된다. 도망치지 않고, 미화하지 않고, 끝을 정면으로 통과한 사랑만이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된다.


끝까지 가보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미완인 상태로 남는다. 아무 일도 아닌 얼굴로, 그러나 평생을 찔러대는 가시처럼.


그날 술자리에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사랑에 망한 게 어딨냐는 말이 사실은,
사랑은 끝나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에.


귀가 후 다시 그것을 생각해본다. 끝이 맺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망한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렇다면 망한 사랑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망한 사랑이란 게 대체 뭘까.


사실 우리는 그 말을 너무 쉽게 쓴다. 사랑이 망했다는 건 대개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서로의 밑바닥도, 생활도, 최악의 얼굴도 보기 전에 멈춰 선 관계. 그래서 더 오래 회상되고, 더 쉽게 신화가 된다.


끝까지 가본 사랑은 의외로 조용하다. 추해질 틈이 있었고, 실망할 기회가 충분했고, 그래서 아름답게 남지 못한다. 반면 끝까지 가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가장 좋은 순간에 멈춰 있다. 망했다는 말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실패가 아니라 중단에 가깝다.


그날 그 사람이 말한 “사랑에 망한 게 어딨어”라는 말은 그래서 조금 다르게 들린다. 망한 게 아니라, 끝내지 못한 거라고. 끝을 보기엔 너무 겁이 나서, 혹은 너무 아까워서, 혹은 너무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 도망친 것들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끝까지 가본 사랑보다 끝까지 가지 못한 사랑을 더 오래 붙잡는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다른 결말을 덧칠할 수 있어서. 그래서 망한 사랑은 늘 아름답다. 현실을 살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진짜 망한 사랑은 끝까지 가보지 못한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 갈 용기가 없었던 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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