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title

by 서립

내가 한껏 병신이었던 이유는 그깟 믿음 때문이었다. 착각의 탈을 쓴 믿음 탓. 네가 돌아올 것이란 믿음, 네가 연락해 올 것이란 착각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그런 허황된 믿음에 모든 감정을 저당 잡혔고, 그러면서도 나는 끝끝내 너를 원망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원망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믿고 싶었던 건 결국 나였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네 진심이 아니라, 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으니까.


결국 나를 망친 건 네가 아니라, 네가 날 사랑할 수 있을 거란 내 멍청한 희망 하나였다.


날 사랑하지 않는 당신을 위해 나는 도대체 무슨 짓까지 한 건지.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바보 같았던 때가 없었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까지 이제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자랐다. 죽음을 연습하던 밤을 지나 삶을 알뜰히 먹어치우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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