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그의 집에서 자고 간다는 메시지를 남길 때면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왔냐는 전화만 할 뿐이었다. 애석한 것이 있다면 나는 엄마의 무언이 너무도 무서운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단 한 번도 엄마의 속을 썩이지 않는 모범생이었던 내가 했던 유일한 일탈은 바로 흡연이었는데 그것도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시작한 일이라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여자애가 흡연을 한다는 사실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고지식한 어른 중 하나였고 나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그 사실을 숨기며 엄마가 없는 곳에서 착실하게 담배를 피웠다.
엄마와 술을 먹고 돌아가다 흡연하는 여성들을 마주할 때면 괜히 가슴을 졸였다. 엄마는 좋지 않은 시선을 흘렸고 내게 너는 담배 안 피우지, 하고 물어보면 얼버무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는 제법 모범적이었다. 시험 기간에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였다. 담배를 피우면 잠이 깬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한껏 받아들였던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느낌이 좋아 계속해서 피웠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모르는 비밀이 생긴다는 사실로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뒤늦은 사춘기였다.
나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등 사교육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나는 알아서 공부했다. 엄마에게 인터넷 강의를 끊어달라고 했다. 수학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결제해 줬다. 엄마는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크는 딸내미를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자랑을 먹고 수동적인 어른으로 성장했다.
처음 남자친구를 사귈 때만 해도 엄마는 내가 그 사람과 섹스를 할까 봐 무척이나 불안해했던 게 느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왔고, 가방 속에서 콘돔을 발견했을 때는 크게 노하기도 했다. 그건 건강센터 같은 곳에서 캠페인 홍보 차 나눠준 것을 넣어둔 것이었다. 아무튼 그게 엄마의 불안을 더 키웠던 것 같다. 내 나이 스물.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당시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아 인생이 망가지는 여성이 등장인물인 소설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왔기에 임신에 대한 불안이 커서 피임만큼은 확실히 했다. 엄마의 불안이 숨 막히기만 했다.
나는 엄마 모르게 생명을 둘이나 잃었다. 사랑하는 언니,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 엄마는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시발점으로 삼아 동성애를 하기도 했다. 여자와 연애를 하며 언니를 그리기도 하고, 아이를 떨쳐내기도 했다. 그 여자들은 내가 흡연하는 사실을 썩 반기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단지 그들은 나를 통제한다는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한 대 피워, 같은 허락을 했다. 참 웃겼다. 내 인생에서 담배 한 개비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숨이 막혔다. 그러면서도 엄마 앞에서는 태연히 웃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었다. 슬픔은 목구멍으로 밥 한 덩이를 삼키면 같이 삼켜지는 아주 가벼운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담배는 내게 단순한 중독이 아니었다. 엄마 몰래 주머니 속에 감춰 들고 다니던 작은 자유였다. 연기를 뿜어내는 순간만큼은 엄마의 무언에서 잠시 벗어나 내 호흡을 되찾는 것 같았다. 시험공부를 버티기 위한 도구였다는 변명은 오래전에 의미를 잃었고, 나는 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연기로 대신 치러냈다.
이제는 담배가 내 몸에 남긴 무게를 똑똑히 안다. 그러나 그것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중독 때문만은 아니다. 연기 속에서만 유효했던 내 젊은 날의 반항, 엄마에게 끝내 보여주지 못한 사춘기의 잔재가 아직 그 한 모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담배를 피우는지 모른다. 아마 끝내 모른 채로 남을 것이다.
*제목은 임솔아 작가님의 단편 소설 <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에서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