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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여름은 저문다. 당신이 또 한번 떠나간다. 햇살의 잔열조차 매달리지 못한 채 흩어지고 남은 계절은 공허를 메우려 서둘러 낙엽을 깔아놓는다. 나는 다시 빈자리를 견디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당신은 나의 가장 완벽한 빈자리. 아마 죽을 때까지 나 같은 사랑은 받지 못할 거예요. 닿지 않을 저주를 오늘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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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늘 새로운 시작과 어설픈 끝을 반복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한 사람에게 평생을 걸고, 나는 여러 사람에게 파편처럼 흩어진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안정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묘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안도감이 스친다. 결국 실패의 연속도 하나의 일관성이 될 수 있다는, 우스꽝스럽지만 나름의 위로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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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언에도 트렌드가 있음을 느낀다. 언제는 치열하게 살고 목표를 이루라고 했으면서 언제는 그냥 살고 틈틈이 행복이나 하란다. 매분 매초가 빽빽해졌기 때문일까. 한 자리 숫자 안에 들어야 성공이라 칭해주는 기준 높아진 세상 때문일까.
세상은 숨 쉴 틈 없이 좁아지고 존재는 자꾸만 넓어진다. 윤리적 잣대는 두터워지지만 범죄는 종류가 다양해진다. 인과관계가 소용없는 사회를 사는 느낌이다. 각자의 존엄만으로 범죄하고 단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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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거나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해내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시기가 이르거나 늦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평범한 때’라는 가상의 잣대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성취에 때는 없지만 우리는 끝내 때를 기준 삼아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결국 꽃과 열매는 같은 줄기에서 피어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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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의 알 수 없는 메시지 하나에 온 새벽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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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의 나로 죽어도 괜찮겠습니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어디 도주하는 자가 따뜻한 이불 덮고 푹 자는 삶을 바라며 발목을 비틀 듯 뜀박질 치겠습니까.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은 결국 나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인 듯합니다. 내 팔로는 아무리 나를 감싸도 나를 안을 수 없으니 누가 나를 안아줬으면 하는 바람.
바람. 바람이 붑니다. 날씨가 화창해요. 도망치기에 딱 좋은 날씨입니다. 내가 어디로 곤두박질치는지는 보일 테니까요. 물음표로 가득 찬 삶이길 바랐는데 말줄임표로 가득 찬 인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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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동에 사는 학생이 투신했다. 내가 밤마다 앉아 쉬는 정자엔 접근 금지 테이프가 둘둘 감겨있다. 달빛이 엉성하게 내려앉았다. 그 학생이 떨어졌던 아파트 옥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어쩌다 그런 용기를 냈을까. 나 역시 수없이 올랐던 곳이라 그 낯선 죽음이 이상하리만치 가까이 느껴졌다.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다. 단지 옥상 난간과 같은 얇은 경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돌아서 내려오고, 누군가는 그대로 몸을 던진다.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아주 작은 균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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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친 사랑에 나를 가둔 채 당신은 떠나고 나만 여기 남겨둔 거야 왜 나만 아직도 사랑에 허덕이게 해 대체 왜 난 사랑이 너무 싫어 당신 때문에라도 사랑 같은 건 두 번 다시 안 해 당신도 영원히 불행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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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오역이다.
사람 사이의 대화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나는 내 마음을 다 담았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 때로는 그 어긋남 때문에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받은 위로와 다정함 또한 정확한 전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어긋난 말 속에서도 누군가는 다르게 읽고,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오역은 실패가 아니라, 관계가 움직일 수 있는 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