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청춘이란 조금 숭고한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친구도 몇 없는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하던 중이었고 그런 내게 스무 살은 조금 특별했다. 학교도 다닐 수 있고, 새로운 사람도 만날 수 있는 찬란한 유토피아 같은 무언가였다. 스무 살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도, 사람들을 만나도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고 모양만 바뀌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청춘은 찬란한 것이 아니라 찬란해야 한다고 믿으며 버티는 시간이라는 걸.
처음 만난 남자친구는 조금 이상했다. 나보다 여덟 살은 많은 사람이었는데 가짜 휘발유를 팔며 시답잖은 깡패짓을 하고 다녔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어 얼른 시작해야겠다는 알 수 없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 조급함은 섣부른 시작을 불러왔고 나는 깡패가 모는 차에 실려 다니며 나도 자유롭게 긁는 신용카드를 그는 왜 긁지 못할까, 에 대한 의구심만 키워나갔다.
당시만 해도 나는 부족함이라는 것은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자란 온실 속 화초였던지라 씀씀이가 헤펐다ㅡ지금도 근검절약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ㅡ.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계산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열 살 차이 나는 남성과 데이트를 할 때도 더치페이를 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나의 첫 섹스 상대라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는데, 데이트가 끝나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모텔방을 대실했다.
처음 첫 키스를 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후미진 골목에 있던 DVD방이었다. 그는 내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말간 얼굴을 한 나를 끌고 그곳으로 이끌었고, 제목도 모르는 영화를 보다가 혀를 섞었다. 그날 이후로 내게 스무 살은 혀로 정의됐다. 물컹한 혀는 나를 헤집다가 불쾌한 타액으로 범벅시키고 빠져나갔다. 무섭다는 말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남자랑은 얘기도 몇 번 못 해본 나에게 키스가 덤덤할 리가 만무했다.
다음은 내가 당시 썼던 글이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축축하고 질척한, 심장을 옭아매는 듯한 혀였다. 스무 살은 그렇게 열렸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느낌의 혀가 나의 스무 살을, 열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 책들이 입만 벌렸다 하면 말하는 벚꽃 잎이 날리는 설렘이라던가, 이름만 대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을 만한 사람이 강연이라는 제목의 TV쇼를 할 때마다 타이틀로 내거는 청춘의 불안 따위는 느낄 새가 없었다. 그저 끈적이고 기분 나쁜 점액들로 점철되어 이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에 바빴다. 다른 스무 살과는 뭔가 틀리다고 생각되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그렇게 틀린 스무 살이 시작되었다."
틀린 스무 살은 온통 혀로 지배당했다. 그 남자는 내가 스무 살이라는 이유로 온갖 구속과 속박을 서슴지 않았다. 위치 추적은 늘 당했고, 시시때때로 휴대폰과 페이스북을 검사받았다. 그렇게 과 동기들과 멀어졌다. 깡패와 연애하며 이따금 외제차를 끌고 캠퍼스를 누비는 내가 좋게 보일 수가 없었을 거다. 친구 사귀기를 그렇게 실패했다. 사랑 없는 첫 연애로.
그렇게 그의 곁을 떠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리석은 첫 연애로 많은 것을 잃었다. 신뢰도, 자존감도,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도. 그러나 동시에 그 잃음 속에서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배웠다. 사랑은 나를 완성시키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감정이라는 걸. 스무 살의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내게 청춘은 숭고하기보다 서툰 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랑을 배운다며 상처를 주고받았고, 성장이라 믿으며 무너졌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아갔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찬란해야 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 시절은 대부분의 우리에게 결핍과 시행착오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