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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레 Sep 11. 2024

가난한 8 학군의 이민 Ep.05

첫 연애의 기억

대학에 들어가고 1학년 첫여름 방학. 내 인생 첫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동갑내기 재수생이었고 성악을 전공하고 있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레슨 혹은 학원 스케줄에 맞춰 데리러 갔었고, 짧게나마 데이트 후 집으로 데려다주는 식의 루틴이었다.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래마을을 가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에서는 들여다볼 수도 없을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빌라에 살고 있었고 나는 늘 경비실 앞에서 그 아이와 헤어지곤 했었다. 연애가 한 달 정도 지속되었을 때 즈음부터 나는 재정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갓 스무 살 베기 남녀의 데이트에서 뭐가 그렇게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기본 씀씀이는 내 상식을 많이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로는 압구정에서 먹었던 15,000원 상당의 돈가스. 그 당시 2005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반적인 돈가스는 5,000원 정도였기에 거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겠다고 말했고 심지어 그 아이는 그 돈가스를 반 이상 남기고 나왔다. 또 다른 예로는 택시를 버스보다도 쉽게 타고 다니는 그녀의 습관이다. 집이 있는 빌라촌에서 서래마을 식당거리까지의 거리는 불과 도보 5~10분 거리 하지만 그녀는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겠다며 그 거리를 그것도 콜택시를 불러왔다 갔다 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데이트에서 대부분의 비용은 남자가 내는 것이 공식이었기에 나는 이런 모든 과도한 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 용돈을 받아 쓸 형편도 되지 않았기에 나는 수능을 마친 후부터 바로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경제생활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차마 그 아이에게 돈이 없어서, 너의 씀씀이가 부담스러워서 만날 수 없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마침 그 아이의 아버님께서 재수하는 딸이 연애를 하는 것을 상당히 탐탁지 않아 하셨기에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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