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강남의 삶...이었던
나는 올해 서른여덟 살로 3남매 중 막내이며 태어나기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그 이후 바로 서울로 올라와 지금까지 살아왔으므로 서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대구가 고향이시며 아버지께서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안의 뿌리는 서울에 내리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날 당시 서울 , 그중에서도 강남 일대의 부동산 현황이라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께서 어떠한 선견지명으로 이곳을 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게 강남에 정착을 하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러나저러나 사는 곳이 꼭 강남이 아니었어도 사업은 사업대로 흥 했을 테니 말이다. 사진앨범이나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 들은 것 외에 내가 스스로 기억하는 시절부터 나의 유년시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우리 집은 현대건설이 지은 그냥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에 30평 남짓 되는 방 3개 화장실 1개 구조였다. 베란다는 확장하여 거실이 조금 넓었으며 베란다를 넓힌 거실 부분에는 인공연못을 만들어 놓고 붕어나 거북이를 키웠던 기억이 난다. 거실 바닥은 대리석 바닥이었고 한가운데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여름이면 그 대리석 바닥이 엄청 시원해서 에어컨을 켜놓고 바닥에 누워있으면 추울 정도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거의 매일같이 파출부 아주머니가 집에 오셨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나이에는 어머니 대신 통원을 도와주시고 간식도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일반적인 집안 청소도 같이 도맡아 하셨다. 그 당시 아버지 차량은 그랜저 초기모델 일명 각 그랜저였고 아버지 개인기사도 있었다. 워낙 우리 남매들과 잘 놀아주시고 친근하셨던 분이라 아직까지도 얼굴과 모습이 생생하다. 매일 저녁이면 피자나 치킨 같은 야식을 자주 시켜 먹고 주말이면 가족들 다 같이 성당을 갔다가 외식을 하는 것이 우리 가족 문화였으며 그 습관은 아직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대부분 외식장소는 강남 내 호텔식당이나 소고기 전문 식당들을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돼지고기는 냄새가 난다고 소고기만 먹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커서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인가 한국에 처음으로 T.G.I 레스토랑이 양재동에 생겼고 그때 당시 거의 유일무이한 패밀리레스토랑이었다. 한동안은 매주 외식장소는 T.G.I였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는 그냥 어머니께서 입혀주시는 대로 옷을 입었었고 브랜드가 뭔지 소재가 뭔지는 아이들에겐 전혀 중요치 않았다. 지금에 와서 앨범들을 통해 어머니께서 내게 입혔던 옷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버버리, 랄프로렌과 같은 브랜드 의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집에는 온갖 종류의 게임기와 레고 또 해외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사주신 외제 장난감, 일제 미니카 등 동네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이 밖에도 속셈학원, 보습학원은 기본이고 영재교육, 에이플러스 과학나라, 합창과외, 외국인 회화 과외, 피아노 과외 등 지금 생각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조기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물론 지속적으로 다니지는 않았고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은 부모님이 억지로 강요하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관심조차도 없었으며 오로지 놀고먹는데만 정신이 팔린 아이였으므로 매일매일 동네에서 제일 늦게까지 몸에 흙을 묻혀가며 놀다 들어가는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저러한 교육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두뇌활동이라던가 감성을 자극하는 데는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