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만 지내기에는 무료해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수 많은 사람들, 그러나 이 중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도시의 생활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단순히 '소비자'로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방랑자'로 아무 생각 없이 걸어다녀도 그 누구도 나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주지 않는다.
가끔 사람들은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물론 성격의 차이겠지만, 나는 그렇다. 남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이 혼술을 하는 시간이든, 담배를 피는 시간이든.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여행이던, 휴가던, 나만의 도피처를 계속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 익숙함을 찾고, 익숙한 곳에서 새로움을 찾으며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 휴가도 여행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수렵시대 인류는 아프리카 유목민족이나 몽골의 일부 민족들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즉, 생활이 여행인 것이다. 그러나 농경시대부터 정착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아직도 여전히 대부분 정착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사람들.
이에 사람들이 여행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새로운 곳에서 refresh하고 오는 기분으로. 이러한 '여행'은 결국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다. '집'이라 불리는 공간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고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새로운 곳에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긴장감은 결국 '익숙한 공간'에 도달함으로서 해소된다. 흔히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어쩌면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개고생'을 통해 '나'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세상'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이를 통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뿐만이 아니다.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일수도 있고, 익숙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일 수도 있으며, 또 '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러한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낯선 곳은 익숙해져 가고, 외부에 위치한 이방인은, 자연스레 내부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