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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한 인간 3

ep.3 롤러코스터

by 서안 Mar 28. 2025

나는 놀이기구를 못 탄다.

아니, 확실히 말하면 믿지 못한다.


추락하면 어떡하지?

기계가 갑자기 멈추면?

머릿속에서 불안한 생각들이 떠나질 않는다.


내 고등학교 시절도 그랬다.

축구를 해오던 나는 고3이 되었고,

예체능도 결국은 다른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이 시기에 인생이 좌지우지된다고 믿었다.


“나는 상품이다.”

그렇다면 결함이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불안했다.

불량품이 될까 봐.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는 좋은 대학에 갈 기회가 많았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었고,

감독님도 나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그래서 기대했다.

“좋은 길이 열릴 거야.”


그런데, 첫 대회를 앞두고

동계훈련 도중 발등 부상을 당했다.


첫 대회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정신적으로 무너졌지만,

두 번째 대회가 남아 있으니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번째 대회 한달전

이번엔 쇄골뼈가 세 조각이 나면서 시즌 아웃.


상승하던 기대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앞이 캄캄했다.


11월,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복귀했다.

하지만 이제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시험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남은 축구부 T.O를 잡는 것.”


그런데 내 머릿속엔 온통 의심뿐이었다.

내가 과연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시 내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축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 롤러코스터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할까?

아니면 내려야 할까?


그때, 감독님이 나를 불렀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테스트를 볼 생각 있냐?”


해외 에이전트를 소개해 줄 테니

동계 시즌 동안 몸을 만들어

프로 테스트를 봐보자는 제안.


나는 다시 한 번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

그동안 해왔던 동계 시즌보다

두 배는 더 미친 듯이 훈련했다.


그리고 1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상승하듯,

내 기대감도 함께 올라갔다.


“이제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도착 후, 에이전트를 만났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열심히 해서 알아서 살아남아 봐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특별한 유망주도 아니었고,

감독님의 추천으로 온 평범한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한 달간의 테스트.

나는 그곳에서 모든 걸 불태웠다.


그리고, 결과는.


매 경기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팀원들의 기대치가 치솟았다.

감독이 나를 불렀다.


“등번호를 정해라.”


팀 내 현지인 주장을 제외하고

첫 번째로 고를 기회.


평소엔 번호 욕심이 없었지만,

그때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10번이요.”


이 팀을 살릴 사람은 나라고 믿었다.

팀원들도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처음이었다.

내가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진 게.


이 롤러코스터는 이제

우주로 향하는 줄 알았다.


시즌 첫 경기.

2:3 패배.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내 플레이는 기대 이하였다.


“괜찮아. 다음 경기부터 다시 하면 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를 앞둔 어느 날.

팀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감독이 바뀐다.”


어이없었다.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두 번째 경기.

이상했다.


뭔가에 홀린 듯,

내 실력의 30%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놈 빼라!”

“저 선수가 왜 뛰는 거야?”


언어를 몰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비난이다.

아니, 그보다는 조롱에 가까웠다.


그 작은 소리 하나까지

모조리 내게 꽂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교체 사인을 보냈다.


“나 좀 빼주세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교체 요청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려 하고 있다.


이후 반 시즌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핀 제거 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수술을 마친 뒤 에이전트와 통화한 끝에 결국 축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긴 여정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는 때때로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나 역시 그게 가장 힘들었다.

10년 동안 매일같이 운동을 해왔고, 내게 주어진 삶의 리듬은 너무나 당연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동하고, 일요일은 쉬는 날.

그게 내 삶의 전부였고, 그래서 더 두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면?”

“이제 와서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또 10년을 투자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답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10년을 온전히 쏟아부은 사람이었다.

그만큼 해봤으니, 다른 것도 못할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자,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롤러코스터를 타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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