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빛나는 조명
나는 한때,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뛰던 축구 선수였다.
하지만 조명이 꺼지자,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스무 살, 처음으로 다양한 빛이 있는 밤거리를 떠돌며 방황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내 이야기를 술안주 삼았다.
“야, 내가 축구 그만두고 나니까….”
그렇게 앞날을 고민하기보단, 그 순간을 잊으려고 마셨다.
한 달 만에 6kg이 쪘다.
아침이 되면,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늦잠은 자지 않았다.
그냥 일어나서 무의미하게 하루를 흘려보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 앞에 섰다.
그저 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지나가던 누나가 한마디 던졌다.
“왜, 거기서 뛰어내리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그런 상황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다.
이러다간 정말 내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날을 정해야 한다.”
나는 그제야 결심했다.
누나는 항상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이 어려워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좋은 대학에 갔다.
법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내신도 뛰어났다.
그래서 나는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나, 나 뭘 해야 할까?”
누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축구 말고, 네가 좋아했던 거. 잘했던 거. 그거부터 생각해봐.”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잖아. 그리고 저번에 뮤지컬 배우 멋있다고 하지 않았냐?”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TV에서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뮤지컬 배우에게 매료된 적이 있었다.
배우들은 어떤 직업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야, 너 노래 좀 하는데?”
친구들이 내 노래를 듣고 한마디씩 했었다.
그게 감독님 귀에 들어갔고, 결국 나는 축제 때 노래 대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는 많지 않았지만, 우승을 했었다.
그렇게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 만에, 마치 꺼져 있던 방 안의 조명이 조금은 켜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냈던 진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성악을 전공하셨기에 이쪽 분야를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대학에 가는 게 어떠니?”
나는 순간 멈칫했다.
대학? 축구만 했던 내가?
내가 10년을 축구에 바쳤듯, 그들도 수년간 연습했을 텐데…
내가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때 친척 형이 떠올랐다.
연기학과를 나온 형은 평소에도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가면을 쓰는 듯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내가 “연기 한 번 보여달라”고 했을 때, 형은 곧바로 몰입해서 연기를 펼쳤다.
그때는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불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형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형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극·뮤지컬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한 세계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막막해졌다.
며칠 뒤, 베트남에 있던 친척 형이 한국에 왔다.
첫째 고모의 아들로, 아버지와 친했던 형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아빠, 형과 함께 술자리에 앉았다.
형은 과거, 외국에서 내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도와줬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부모님 생각은 해봤어?”
“프로까지 갔는데, 이제 좀 빛을 볼 시기에 노래를 한다고?”
“배우? 네 친척 형도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데도 힘든데, 네가 가능하겠어?”
쓴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옆에서 아버지는 술만 들이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미친 건가?’
‘부모님이 허무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는 핸드폰 배경화면을 내 프로 데뷔 경기 사진으로 해두셨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현수막까지 걸며 홍보하셨다.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알겠다”라고만 하셨기에, 괜찮을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은 정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길을 가야 하나.”
“그리고 최대한 집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렇게, 내 방의 불은 다시 꺼져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누나는 내게 말했다.
“곧 대학 수시 원서 넣는 날이야.”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누나가 물었다.
“안 갈 거야?”
나는 친척 형이 했던 말,
그리고 내가 했던 고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 순간, 누나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형이 하라면 하고, 말라면 안 할 거면, 네 인생 그 형이 살아줄 거야?”
“부모님 걱정을 왜 네가 해?”
“그렇게 걱정할 거면 축구는 왜 계속했냐?”
“끝까지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네 인생을 살아.”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래.
한 번 사는 내 인생이다.
남을 걱정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짧다.
하고 싶은 거 하자.
그렇게 나는 대학교 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가능성이 있는 대학을 찾아야 했다.
2.입시 조건을 분석해야 했다.
3.나에게 맞는 준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뮤지컬 관련 대학을 조사해보니,
대부분은 연기·노래·무용·특기를 기본적으로 요구했다.
더 수준이 높은 곳은 **시창(악보만 보고 부르는 시험)**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단 한 달.
그 안에 가장 빠르게 늘 수 있는 건 ‘노래’였다.
그래서 노래 시험만 보는 학교 두 곳을 골라 원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다시 진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한 달만 도와주세요.”
선생님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코인노래방에서 MR을 다운받아 하루 3시간씩 연습했다.
주말마다 선생님께 체크를 받으며 피드백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입시 날이 다가왔다.
입시장으로 향하는 차안에는 나의 목소리로 가득찼고클락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목을 풀었다.
그래서였을까? 입시장으로 가는 길은 뻥 뚫린 것처럼 느껴졌고, 1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체감상 20분도 채 안 된 것 같았다.
대기장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마술책을 들고 온 친구, 드레스를 차려입은 친구, 심지어 쫄쫄이를 입고 온 친구까지. 순간 충격이 몰려왔다. 이게 뮤지컬의 세계인가? 평범해서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다. 연습실로 안내받아 들어갔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신발장 앞에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하던 목 푸는 방식이 맞는 걸까?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때, 안내원이 나를 힐끔 보더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왜 몸을 안 푸세요?”
나는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아… 다 풀고 와서 괜찮아요.”
혹시 건방진 대답이었을까?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안내원은 감탄하듯 말했다.
“와, 실력이 확실하신가 보네요.”
사실,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엄마 손을 잡고 태권도장에 처음 들어선 8살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오히려 빨리 내 차례가 오기를 바랐다. 이 낯선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드디어 내 번호가 호명되었다. 조명이 나를 비추었고, 정면에는 연륜이 묻어나는 네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순간 떠오른 말이 있었다.
“넌 평가받는 게 아니다. 너를 보여주는 거다.”
같은 멋진 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내 머릿속을 스친 건 다른 조언이었다.
“심사위원들을 감자라고 생각해. 얼마나 귀엽니?”
순간 긴장이 풀렸다. 그렇게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는 큰 실수 없이 시험을 마쳤다.
시험장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축구를 시작하고, 그만두고,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기까지 온 내가 정말 맞는 걸까?
내 선택이 옳은 걸까?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었고, 돌아오는 길은 체감상 2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까? 나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나는 합격을 원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해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해내는 것. 그것이 내 전문 아니었던가?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빛을 받아보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 정답은 없었다.
축구를 하던 시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뮤지컬을 하던 시절, 내가 다시 축구 지도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쩌면 인생은 하나의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끈들이 여기저기 걸리며 연결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길은 다음 여정으로 이어지고, 어떤 길은 다시 돌아오지만, 그것이 두 줄이 되어 더욱 단단해질 수도 있다.
결국, 모든 순간은 다음을 위한 과정이었고, 나는 그렇게 또 다른 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