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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편 상식은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지켜야 하는가

윤리•사회 철학

by 해솔



세상은 변한다. 기술과 제도, 언어와 유행이 달라진다. 그래서 상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적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을 뿐 기준선 자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 기준선의 역할은 커진다.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 주는 안전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준선이 보편 상식이다.

보편 상식은 낡은 관습이 아니다. 사회가 망가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운영 원칙에 가깝다. 예측 가능성을 만들고 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실수를 고칠 여지를 남긴다. 그 결과 거래 비용이 낮아지고 갈등 비용이 줄어든다. 산업화 시대에도 필요했고 디지털 전환기인 지금도 다르지 않다.

보편 상식은 하나의 기술처럼 작동한다. 첫째, 예측 가능성을 보장한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규칙이 작동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계획이 선다. 둘째, 상호성을 요구한다. 역할이 바뀌어도 수용 가능한 규칙만 오래간다. 셋째, 오류 수정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틀릴 수 있다. 그래서 상식은 피해를 최소로 하고 되돌릴 수 있는 길을 미리 마련한다. 환불과 반품, 항소 절차, 단계적 시행과 롤백 같은 설계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 세 축이 살아 있으면 제도가 바뀌어도 공동체는 버틴다.

문화상대주의는 방법의 차이를 강조한다. 실제로 보호 장치를 구현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다. 그러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타인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시대와 문화가 달라도 유효하다. 본질은 지키고 방법은 조정한다. 균형은 이 지점에서 잡힌다.

보편 상식이 왜 필요한지는 현실의 작동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존엄을 지키면 신뢰가 유지되고 감시와 통제 비용이 내려간다. 정당 절차를 따르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용 가능성이 높아져 분쟁이 줄어든다. 증거를 우선하면 권력이 진실을 대신하지 못해 오류 수정 속도가 빨라진다. 상호성을 지키면 보복의 연쇄가 끊겨 협력이 쉬워진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단기 이익이 장기 생존을 해치지 않는다. 도덕을 넘어 운영의 언어로도 타당하다.

무엇을 보편 상식으로 볼지는 다섯 가지 간단한 물음으로 가려낼 수 있다. 그 규칙을 모두가 적용해도 사회가 무리 없이 돌아갈지 점검한다. 내가 약자나 소수자의 위치에 있어도 같은 판단을 수긍할 수 있는지 자문한다. 결정의 이유를 드러내도 정당성이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설득력이 남아 있는지 살핀다. 충돌이 생겼을 때 전체 피해를 줄이는 방향인지 평가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이 다섯 가지를 짧게 점검하면 유행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상식의 영역인지 분별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이 점검의 가치가 커진다. 성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속도가 판단을 압도하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보편 상식은 브레이크라기보다 차선과 가드레일에 가깝다. 차선이 있어야 속도를 내도 안전하게 도착한다. 가드레일이 없으면 빠를수록 위험이 커진다. 전환기일수록 원칙을 더 자주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지키는 방법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다섯 문장을 적는다. 누구의 존엄에 영향이 있는지 서술하고, 자리를 바꿔도 같은 결론인지 점검하고,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공개해도 정당한지 스스로 묻고, 오늘의 이득이 내일의 손실이 되지 않는지 확인한다. 짧은 기록이 쌓이면 판단력은 누적으로 자란다. 습관이 되면 상식은 구호가 아니라 기술이 된다. 기술이 되면 공동체의 신뢰와 자유가 함께 넓어진다.

보편 상식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방법은 시대에 맞춰 바뀔 수 있어도 지켜야 할 핵심은 남겨야 한다. 그 핵심이 안전을 지키고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며 오류를 고칠 기회를 보장한다. 결국 이 핵심이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미래를 함께 보호한다. 그래서 보편 상식은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사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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