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합격이 기쁘기만 한건 아니었다.
계속된 도전, 그리고.
두 번의 도전만에 면접까지 갔다는건 긍정적인 시그널이 분명했지만. 상반기, 하반기 내가 계획한 1년 안에 최종합격하기에 실패하자 조급함이 몰려왔다. 조급함은 불안으로 바뀌어 불면증이 찾아오고, 밤새 우울감에 허덕이다 정신을 차리면 해가 떠있곤 했다. 그렇지만 주저앉으면 낙오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것만 같아 밤을 꼴딱 새운 뒤에도 독서실로 향했다. 1년 안에 안되면 2년 안에 입사하면 될 일이었기 때문에 그 뒤로도 계속 건보와 심평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안에서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빗장을 더 세게 걸어 잠그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지내다간 취준생이 내 평생 직업이 되어버릴 거 같아 속이 상해가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의 부모님께 짐이 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물론 취준생 기간 동안에도 내가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긴 했다.- 그렇게 자괴감에 몸부림치다 눈을 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엔 내가 두드려볼 수 있는 문이 많은데, 두 개의 문만 두드리고 있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다양한 공공기관의 공고를 확인했다. 내가 쌓아온 경력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곳이면 된다는 조건을 바탕으로 몇 군데를 찾아 지원서를 넣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눈을 돌리자 금방 최종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었다.- 좋지 못한 이유로 퇴사했으므로 기관의 이름은 밝히지 못한다.- 이미 내가 잘할 줄 아는 업무를 하면 되는 곳이었고, 대외적 이미지도 좋은 기관이라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부모님도 지인들에게 합격소식을 알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2년간의 취준생, 중고백수, 탈락자라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었다. 평생 직장을 얻은 줄 알았다.
꿈과 현실의 거리는 우주보다 멀다.
몇 주간의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뭔가 이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직무는 낯설었고, 내부의 어떤 이는 도망가라는 말을 농담인 듯 진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신입 직원에게 던지는 농으로 받아들이기엔 진지하고 무서운 말이었다.
실제로 업무에 투입되자 도망가라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근무시간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일해야 했다. -일이 힘들었다기 보다는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근 후에는 물에 젖은 솜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 위에 내 땀자국을 남기며 귀가했다. 감정적으로 편안해지고, 무엇보다 행복해지려고 응급실을 탈출(?)한 나에게 맞는 곳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회적 체면을 위해 버텨야 하나 고민했지만 나의 행복을 위해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나 스스로가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