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주제에 감히 서울에 놀러를 가?!!
백수의 서울행.
백수 일주일차,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부모님께는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서 놀고, 그 김에 병원도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서른이 넘은 다 큰 딸의 주머니에 돈봉투를 챙겨주시며 친구들과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하신다. 참 속이 없는 부모님이다.
내가 탄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랜딩하고, 휴대전화의 비행기 모드를 풀자마자 친구 1에게 카톡이 와있다. [ 공항 2층 탑승장 쪽에서 대기 중. 소나타 0000 답장 없으면 공항 근처 한 바퀴 돌고 있을게. ] 뭐 대단한 행차 했다고 픽업까지 나왔냐며 심드렁한 척하면서도, 벅차게 고마운 마음을 안고 한 달음에 친구 1의 차로 쫓아갔다.
친구 1의 차를 타고 이동하여 미리 약속한 식당에서 친구 2까지 만났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근황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 호호 시간을 보냈다. 친구 1이 건네는 예쁜 초가 든 선물상자를 보며 “뭐 이런 거까지 준비했어. 고맙다, 야.”하며 가벼운 인사를 전한다. 친구 1은 집으로 귀가, 나와 친구 2는 친구 2가 예약해 둔 병원 근처 호텔로 이동. 뭘 이렇게까지 비싼 데를 예약했냐며 타박하는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내가 편하게 있다 가길 바라는 친구의 마음을 온전히 알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나는 병원 갈 채비를 하고, 친구 2는 출근할 준비를 -업무 사정상 오전 반차 밖에 못 냈다고 했다.-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친구 2가 건네는 향수병. 아주 예전에 내가 이 향을 맡으면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준비해왔다고 했다. -무려 한정판 향수라,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걸. 귀한 물건을 나를 위해 준비해 왔다니.- 온몸에 휘감듯 뿌리고 나니 정말로 긴장이 풀렸다.
호텔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고터 -고속버스터미널- 로 이동. 내 보호자로 지원한(?) 친구 3과 -더 정확하게는 돌도 안된 친구 3의 아기까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웃고 떠들기 바쁘다. 오랜만이지만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갖다 보니 어느덧 예약시간이 다가왔다.
병원으로.
10여 년 전 양안을 수술했던 나는 최근 그 부작용으로 왼쪽 눈을 수술해야 할 상황까지 왔다. -살고 있는 지역의 병원을 여러 군데 방문했지만 가는 곳마다 말이 달랐다.- 그래서 돈도 못 버는 중고 백수 주제에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까지 와야 했다. -근무 중에는 평일에 서울을 다녀왔다가 다음날 출근하는 게 마뜩잖은 일이었다.- 백수가 될 것으로 예정된 날 이후로 예약을 잡아뒀고, 이제서야 올 수 있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접수를 하고 대기, 한참을 기다리다 각종 검사를 받고, 그렇게 또 30분을 넘게 대기해서 예진을 받고, 또 기다림. 내가 검사실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진료받을 준비를 하는 동안 친구 3은 내 가방순이(?)를 자처해 주었다. -아기가 걱정되어 귀가를 여러 번 종용했지만, 친구 3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다며 옆에 남았다.- 무려 4시간에 걸친 검사, 예진, 진료를 거쳐 수술시기가 되었으니 더 이상 늦추면 안 되겠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일사천리로 수술 예약 및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섰다. 친구 3은 KTX에서 이동 중에 읽으라며 책을 선물해 주고, 서울역까지 나를 안내해 준 뒤에야 귀가했다.
집으로 향하는 KTX를 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의 눈 문제가 큰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겨우 나이 서른셋에, 또 눈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건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다. 게다가 중병 일 때나 간다는 서울의 대형병원까지 갔다는건 나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내 불안을 세 명의 친구가 덜어주고 있었다. 함께해 주고 웃을 수 있게 해주며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충분히 느껴져서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로 고마웠다. KTX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몇 개월 뒤 수술 전 검사를 받으러 서울에 갈 때, 또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며 집을 나설 예정이다.
지금 나는 직업도, 돈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