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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6. 2023

간호사 면허를 반품합니다. -상-

선배한테 싸대기를 맞는 직업.

내가 간호사를 포기한 첫 번째 이유.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신규 간호사로 1년을 보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1년을 가까스로 버텨냈다. 1년을 견디고 2년 차가 되자 생각보다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업무는 여전히 버거웠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할만했다. 언제나처럼 버둥거리던 어느 날 한방 병원 간호사로 일했다는 1년 차 높은 선배 간호사가 우리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 선배 간호사는 처음부터 말했다. 자기는 비위가 약해서 더러운걸 못 보고, 징그러운 건 만질 수 없다고. 나는 내 몫을 하기에도 힘들었기 때문에 귀 담아 듣지 않았지만, 저 말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선배가 같이 근무할 때 했던 걸었던 조건.


1. 환자가 피를 흘리면 자기는 오더를 처리할 수 없다. 그러니 네가 해라. (응급실은 업무 특성상 피가 낭자한 환자도 오고, 심한 경우 환자 몸에서 피가 솟구치기도 한다.)

2.  대소변이나 구토가 묻은 환자 케어도 당연히 못한다. 네가 나보다 연차가 낮으니까 이런 경우에도 네가 맡아라. (이 또한 응급실 내원 환자의 경우 뇌출혈, 뇌경색, 의식불명 등 오물이 묻어오는 경우가 많다.)

3. 깊은 열상이나 열린 골절상의 응급조치를 할 수 없다. 나는 못하겠으니까 네가 해라. (이쯤 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저 선배가 맡아야 할 환자가 저 중에 한 가지라도 포함될 경우 그 환자의 담당 간호사는 내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본디 나에게 할당된 환자를 저 선배가 맡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게 맡겨진 환자의 처치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저 선배에게 맡겨진 환자까지 모두 맡아야 했다.


 내 업무만 처리하기에도 버겁던 나는 더 이상 근무를 할 수가 없었다. 많이 의지하던 책임 간호사 선생님께 지혜를 빌리고 싶었으나 육아휴직 중이셨고, 나를 유독 예뻐해 주시던 선배 간호사는 퇴사한 상태였다. 다른 선배 간호사들은 자기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보여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당 선배 간호사에게 직접 현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었고, 해당 선배 간호사에게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렸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을 기다렸지만, 내가 들은 답변은 “눈 깔아라, XXX아. 나는 처음부터 니 눈빛이 X나 마음에 안 들었다.”라는 상스러운 말이었다. 이 말을 듣자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내가 겨우 한 말 이라곤 “눈 못 깔겠는데요."였고. 나는 저 한 마디를 내뱉고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싸대기(?)를 맞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까지 하다. 하하하.-


 이후 첫 번째 병원에 사직 의사를 전달하며, 근무 중에 뺨을 맞았다고 말했지만 귀 담아 들어주는 상급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 대 정돈 맞을 수도 있지, 우리 때는~"이라는 개소리와 자기가 나를 얼마나 신경 써줬는데 이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거라는 간호부 어느 상급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입사 동기만 그동안 수고했다며 안타까워해 주었다.-


 1년 동안 죽을 듯이 열심히 일했던 나는 거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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