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특수학교 문제를 보고..
나는 언제나 아래에서 위로 세상을 봐야 합니까?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도 휠체어에 앉아있어 위를 봐야 되고, 밥과 물을 먹을 때도 천장을 봐야 흐르지 않고, 잘 먹을 수가 있습니다. 목이 아파도 대화를 하려면 위를 보고, 무엇을 먹어도 위를 보고, 심지어 교육을 받을 때도 위를 봐야만 했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国) 국민이라면 4대 의무가 있습니다. 국토방위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가 국민의 기본 의무로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국방, 근로, 납세 의무는 어른이 되어 하는 의무지만 교육은 그 자체로만 보아도 어릴 때부터 필수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80, 90년 세대 장애인인 나에게는 참아야 된다는 관습이 남았습니다. 뇌병변 장애인인 나는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녀야 했습니다. 특수학교 자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장애유형 따라, 다른 교육을 받아야 할 15명~20명의 장애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한 선생님에게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현실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고, 사회에서는 장애인복지가 충분히 좋아지고 있는데 무엇이 급하냐고 말합니다. 20년 전, 공교육인 특수학교보다는 개인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좋게 만들면 되는 걸로만 알았나 봅니다. 특수학교에 장애를 모르는 사회복무요원을 배치하고 일반학교에 장애이해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고 특수학급부터 만들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아동에게는 힘들겠다는 말만 던져졌습니다.
그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러면서 장애 자식을 둔 부모님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을 굽히면서 국가의 의무인 특수학교를 만들어 달라 애원하는 걸 왜 막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님의 눈물은 특수학교를 원합니다.
비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님처럼 국, 영, 수학원을 더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맘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과 장애유형 따라 다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내 학창 시절, 그 책가방 안에 항상 아쉬움이 들어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말 중에 <너희들이 죽은 후 후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 (플라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작 이것밖에 할 수는 없었나요?>라는 말을 듣기는 무섭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글 쓰는 것이라 이런 글을 썼습니다.
김삼식 기자
말을 하지 못하지만,
역으로 생각하고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는 기자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