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내가 보기에도 다른 누가 보기에도 걸림돌이다. 지나가는 버스를, 지하철을 지척에서 보면서도 뛰어가 잡을 수 없다. 아무리 급해도 정류장에서 ‘내가 너무 서둘렀어’ 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또한 넘어져 피를 보게 되면 눈물이 날 정도로 내가 싫어진다.
포기도 빨라졌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지만 난 다르다. 시간과 마음의 힘을 절약하기 위해 눈을 돌리기로 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대편 문이 열린다고 한다. 다만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기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이라 한다. 난 열린 문을 찾기로 결심한 것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 창조적인 것까지 합하면 헤아리기가 힘들다. 단, 정의롭지 못한 사기 같은 방법은 제외하기로 한다. 조금 더 현명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생각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내게 이것이 걸림돌이라 할지라도.
내게 디딤돌로 표현되는 단어는 감사와 긍정이다. 사실, 감사와 긍정은 같은 표현일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감사할 수 있을 테니까.
한 번은 다섯 살, 여섯 살 된 아이가 유모차를 버젓이(?) 타고 오는 것이 아닌가. ‘다 큰 애가 왜 저걸 타고 있어?’ 나도 모르게 뱉은 한마디. 그러자 엄마 하시는 말씀. ‘넌 다 큰 애가 왜 엄마는 붙들고 다니니?’ 그 아이 사정은 헤아리지 못하는 나를 꼬집어하시는 말씀이다. 미처 내 상황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가 어딘가 아플 수도 있고 다쳤을 수도 있고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난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렇듯 조금씩 역지사지의 마음에 조금씩 마음을 내주고 있다.
사실 내가 힘들면 모든 것이 불편하다. 역지사지는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 누가 보아도 예쁘지 않을까.
나의 이런 모습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작고 평범한 것에 맘껏 기뻐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김은주 기자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사람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솔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