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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웃음이 나와!

핑크조아 (손창명)

by 서부 글쓰기모임

어린날에 엄마의 심부름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께 물을 갖다 드릴때가 제일 신났습니다. 밭둑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놀이터였으니까요. 밭둑에 앉아 칼처럼 길게 자란 지랑이 풀을 뽑아서 하얀 밑둥을 질겅질겅 씹으면 달콤한 물이 나왔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딱 좋은 간식이었습니다. 그러다 개구리가 튀어나오면 두발로 통통구르고 놀란 개구리 폴짝폴짝 뛰는 모습 재미있어서 놀려주려고 쫒아가다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침 풀속에서 기웃거리던 여치는 구경거리 생겼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닙니다. 화풀이라도 하듯 여치를 잡으려 풀속을 헤집고 찾다가 풀잎에 베이곤 합니다. 개울에 빠져서 짜증나고 풀잎에 베어서 손가락이 아프고 피가나도 멀리 기차소리가 다가오면 얼른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창가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보이면 손가락에서 피가나고 개울에 빠져서 짜증나도 너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근데 시커먼 화물차는 재미없었습니다. 기관사 아저씨만 있고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한칸두칸세칸~열칸하며 즐겁게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칸두칸세고 있는 나를 향해 기관사 아저씨가 먼저 손을 흔들어줍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두손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어느덧 그림자가 길어졌습니다.

떠날줄 모르는 웃음 가득안고.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보고 엄마는 소리쳤습니다.


너는 심부름간지 언젠데 이제 와!

뭘 잘했다고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예상치 못한 엄마의 외침에 찰랑거리던 웃음기 하얗게 굳어지는데 개구리 쫒다가 신발에 붙은 흙덩이는 눈치없이 히죽거리며 떨어질줄을 모릅니다.


잔뜩 풀이죽어있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기관사아저씨가 말을합니다.

괜찮아, 웃어!

내일 또 손을 흔들어 줄께!


살며시 미소가 맴돕니다





핑크조아, 손창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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