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아들로 살아가며...

by 서부 글쓰기모임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혼자이길 원해서 이 낯선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진 않을 것입니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을 수 있고 함께 위로하고 또 위로받을 수 있는 건,,. ‘어머니’가 잉태하시고 10달 동안 배 아파 우리들을 세상 밖으로 낳아주셨기에 가능합니다. 이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의 뿌리내림’입니다.


저도 중도장애 당사자 중의 한 사람으로, 건강했던 지난날 장애의 뼈아픔을 맛볼 수밖에 없어 현재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잘 눈에 띄지 않는 제 장애에 대한 질문에 ‘뇌전증’이라고 답변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십니다. 장애가 오래전부터 의학적으로 바꿔 부르게 된 걸 얘기하면 처음엔 잘 수긍하지 못하다가도 전에는 ‘간질장애’라 부른다고 이야기하면 쉽게 이해합니다.


뇌전증 중도장애인으로서 은평구에서 불혹의 나이가 넘도록 살아오면서 ‘어머님의 애정’은 제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릴 때의 사랑과는 또 다른 남다름이 있었습니다. 제 건강이 지금까지 오도록 조금씩 더욱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의학의 효과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어머니의 사랑’ 또한 단단히 버티던 바위산을 허물어뜨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흐르는 시간만큼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시며 이런저런 노환에서 벗어나기 힘드셨습니다. 그 노환을 만들어낸 주범에 저도 큰 몫을 했단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크게 낙상하셔서 한 번 누우시면 혼자선 일어나시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셨습니다. 저희 남매들의 가슴 또한 놀라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아픔과 상처로 얼룩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어머니의 재활을 계기로 한 번 더 뼈아픈 반성을 합니다. 그동안 있어왔던 효(孝)에 대한 형제들의 다짐을 다시 한번 각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막내로 자란 저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효성’은 누나와 형보단 더 깊은 마음 이리라 다져 봅니다. 제가 처음 장애를 얻게 되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저 때문에 겪으셨을 몸과 마음의 고생들을 어떻게 이루 다 말과 글로 표현하겠습니까? 저의 건강이 허락될 때 어머니를 위해 조금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최대한 간병해드리고픈 마음과 의지입니다.


지금은 비록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더라도 집안에서 나름의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조만간 원하는 만큼의 결과도 나오길 기도합니다.


행복을 향한, 작지만 서로의 의지를 헤아리는 마음들이 모여서 모두 한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원하는 큰 뜻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석인 기자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

사회에 진한 애정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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