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나를 부를 때

다시 쉬게 되었다.

by 채로링

머리에 한동안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머리카락이 젖은 후에, 해먹처럼 촘촘하게 얽힌 전선다발을 모자처럼 머리에 썼다. 3분은 아무 동작도 하지 않은 채로, 또 이어지는 3분은 5초마다 한 번씩 눈을 깜빡이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검사를 마쳤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몰려드는 생각들이 태풍의 한 가운데에서 태풍을 바라보고 있는 것마냥 요동쳤다. 생각을 그만 하고 싶어, 생각을 제발 그만 하고 싶다는 감정에 시달리며 받아든 검사지에는 뇌파가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아주 많이 비정상적임을 알아챌 수 있는 모양의 파형을 그리고 있었다.


한순간에 민생지원금을 다 털린 가공할 비용의 검사를 마치고 기력마저 다 뺏긴 나에게 의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중증 우울증에 공황장애가 온 거라고. 예전에도 그런 적 있으니 본인도 이미 직감하고 있지 않았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꽤나 차분하게 내 증상을 설명하던 나는 결국 의사에게 확정적인 결론을 듣자마자 저항할 수 없이 울고 말았다. 가장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시간으로 속절없이 돌아간 것만 같아서. 그런 나를 의사는 멀뚱멀뚱 쳐다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약 먹어 보면 나을걸요, 근데 증상이 꽤 심하니까 일단 진단서는 써 드릴게요. 유독 상처를 주는 의사의 태도를 따져물을 기운도 없이 나는 검사 결과지와 약 한 뭉텅이를 받아들고 터덜터덜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떠올렸다. 나는 오르페우스였고, 내 마음은 에우리디케였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마음의 간곡한 청을 무시하고 그저 내가 향해 가고 싶은 대로 내 마음도 잘 따라오고 있나 돌아본 게 화근이었다. 다시 지하 세계로 무참히 빨려들어가버린 내 마음을 멍하니 바라본 나는 결국 내가 모든 걸 또 망쳤다고 섧게 울었다.


5년 전, 사회부 캡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팀장님께 마음이 좀 아프다고 했다. 다정한 팀장님은 내게 한 달간 쉬다 오라고 했다.


그러니까 5년 전 초여름의 나는 광화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졌고, 눈 앞에 보이는 아무 정신의학과나 들어가서 제발 진료를 봐 달라고, 살려 달라며 울었다. 당시 소속 스포츠팀의 만행으로 고인이 된 운동선수 사건을 취재하고 있던 참이었다. 알 권리와 공론화라는 듣기 멋진 명분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헤집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전화를 한 번 걸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옥죄던 때가 빈번했다. 그걸 꾹 참고 약하게 굴면 안 된다고, 이런 것쯤도 못하면 기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쥐어짜서 아래 기사를 썼다. 취재 내용을 일진 선배에게 보고하자마자 쓰러진 건 덤이었고.


“팀닥터 성추행까지”…봇물처럼 터진 피해 증언들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석 달간 쉬면서 나는 단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도 자지 못했고 먹지도 못했지만 몸이 계속 부으며 약 부작용 탓으로 체중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도 조절 능력이 엉망이 됐다. 지금 느끼는 증상은 그 때와 사실 별반 다르지는 않다. 밖으로 나갈 정도는 되지만,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평균 맥박이 100 정도에 이른다.


그나마 5년 전과 지금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중증 우울증까지 1+1 전단 행사마냥 얻었다는 것. 사실 업무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의 우울감이 지속되길래 애저녁에 직감은 하고 있었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몇날 며칠을 버텼으나 회사 로비에서 사무실로 올라가기 싫어 한참을 앉아 있는 나를 친한 동료가 데리러 오고, 사무실 문 앞에서 들어가기 싫어서 눈물이 날 정도까지 이르자 내 발로 병원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마음을 정리해 보았을 때 짐작가는 요인들은 분명히 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지 못한 마음, 그 사이에서 추가되는 부담스러운 일들, 엄마에 대한 걱정과 불안, 가까운 미래에 대한 강박과 걱정...으레껏 이 중에 하나는 누구나 안고 갈 법한 고민이겠으나 아무리 먹기 좋은 음식일지라도 한 데 다 섞어 놓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것처럼 모든 생각을 섞었더니 완벽한 쓰레기가 되어 뇌와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갉아먹힌 마음이 나를 간절히 불렀던 것.


잃게 되면 얻는 것도 있는 법 - 그건 내가 잠시 멈추어서 무엇을 돌아보아야 하는지 시간을 주는 것이다.


첫 번째 공황장애 발병 때 병가로 쉬는 석 달 동안, 나는 처음으로 건강을 돌보는 법을 배웠다. 온 정신과 삶이 철저히 기자라는 직업에 맞추어져 있어서 하나도 돌보지 않던 내 건강을 들여다 보게 된 것이다. 더불어서 한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중남미 문화권과 멕시코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이다. 텔레노벨라 같은 멕시코 드라마 <꽃들의 집>을 보면서 완전히 빠져들었고, 스페인어 공부까지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복직하고 나서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학습지를 모두 버려야 했지만. 그렇게 그 어떤 것보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으로 치료에 전념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꽃들의 집>을 본다. 파울리나는 여전히 엄마인 비르히니아에게 걱정 섞인 화를 내지만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한다. 미 마마, 엄마에게 스페인어 문장을 녹음한 파일을 보내자 '갑자기 웬 스페인어?'라는 답이 날아왔다. 엄마, 사실은 그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답니다. 이미 5년 전 겪어본 적 있는 일상이니까, 이번에도 잘 치유해 나갈 수 있다. 가만히 지하 동굴 입구에 앉아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나의 에우리디케가 똑같이 나와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만큼 나를 다 따라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두 번째로 찾은 병원 의사는 무척이나 높은 우울도에 비해 극단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내 삶에 애착이 있는 걸요, 앞으로 이루고 겪고 해 나가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물론 이 생각 때문에 다시 공황을 마주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백 번 낫다. 수면제를 먹어도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이 약이 내가 오늘만큼은 푹 잘 수 있게 도와주기를 기도할 뿐이지.

이번에도 마음의 부름을 들었으니, 내 마음을 잘 사랑하고 아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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