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로 <여탕보고서> 배경지 부산 동래온천

하일권 <목욕의 신> 배경지로 알려지기도 했던 그곳.

by 서찬휘

겨울 하면 온천이다. 뜨거운 온천수 가득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괜히 으어-소리를 내 주며 고개를 들어볼작시면 세상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기분이 든다. 추운 날씨에 어깨가 움츠려들게 마련인 이 계절에 선택한 여행지는 목욕을 소재로 한 두 작품, <목욕의 신>과 <여탕 보고서>의 배경지로 등장한 부산의 동래 온천이다.


20190621_043932.jpg 허심탕 오피셜 테스 형 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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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소재로 한 발칙한 만화들

- <목욕의 신>(하일권)과 <여탕 보고서>(마일로)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곳곳의 온천장에 데려가셨던 아버지 덕에 나는 몸이 좀 찌뿌둥하다 싶으면 곧바로 온천욕부터 떠올리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내게 목욕을 소재로 삼은 웹툰의 등장은 그 자체로 굉장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과 마일로 작가의 <여탕 보고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먼저 <목욕의 신>은 <삼봉이발소> 이래 <삼단합체김창남> <안나라수마나라>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하일권 작가의 작품이다. 하일권은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독특한 감성과 현실 속 일면을 살짝 비틀어 만들어내는 웃음으로 많은 인기를 끄는 작가로, <목욕의 신> 또한 목욕 관리사들의 세신(때밀이)를 응용한 ‘목욕투’를 비롯해 독창적인 설정을 가미해 큰 웃음을 준 바 있다.


<목욕의 신>은 빛나는 도시 생활을 꿈꾸며 서울에 왔지만 대학 졸업 이후 취업난과 버리지 못한 사치 습관에 쪼들리다 급기야 사채까지 손댄 23세 허세남 ‘허세’가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도중 시야에 들어온 초대형 목욕탕 ‘금자탕’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목욕탕의 안주인 격인 세신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점과 배경에 등장하는 초대형 목욕탕의 위용이 볼거리다.


<여탕보고서>는 금남의 구역인 ‘여탕’과 얽힌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만화의 특성을 살려 익살맞게 묘사해낸 작품이다. 목욕을 즐기는 작가가 겪은 일화를 비롯한 여탕 소재 이야기들을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별로 전개해 이어가는 개그 만화여서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탕이라 하면 으레 떠오를 법한 온갖 상상을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하게 배반(?)해가며 이야기보따리를 끄집어내는 작가의 감각이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목욕의 신>과 <여탕 보고서>는 둘 다 목욕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목욕의 신> 속 금자탕의 모티브가 된 목욕탕과 <여탕 보고서>의 49화 속 주요 배경지가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배경지는 바로 부산 동래온천의 명물 ‘허심청’. 또한 <여탕 보고서>의 마일로 작가는 다름아닌 동래온천이 자리하고 있는 온천장(부산 온천1동 일대) 출신이다. 그런 연유로 <여탕 보고서> 48~49회차는 아예 동래온천 특집으로 허심청 외의 온천장 곳곳을 구석구석 소개하고 있다. 하여 이번엔 두 작품에 등장한 동래온천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동래온천 나들이


20190621_100502_HDR.jpg 백학 조형물


동래온천에는 온천물로 다친 다리를 고치는 학을 본 절름발이 노파가 학을 따라해서 멀쩡해졌다는 백학 전설이 유명하다. 이를 부각하려는 듯 동래온천은 곳곳에 백학 조형물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동래온천엔 목욕 업소들이 30여 개나 넘게 있지만, 온천장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탐색해 보니 탕에 몸을 본격적으로 담그러 가기 전 한 바퀴 둘러봐도 좋을 만큼 재미난 구경거리들이 많다. 다만 이번 여행의 목적이 두 만화의 소재인 ‘목욕’에 맞춰져 있기에 역사 명소를 제외하고 움직여 보았다.


먼저 볼 곳은 <여탕 보고서> 48회에 등장한 동래온천 노천족욕탕(부산 동래구 금강공원로26번길 21). 2005년 11월 11일 첫 선을 보인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노천 족욕탕이다. 구청에서 운영 중인 공공장소여서 돈은 받지 않는다. <여탕보고서>에 나온 대로 나이 드신 분들이 빼곡하게 앉아 계셔서 나 같은 어린 건 신발을 벗어 볼 엄두도 못 냈다. 동래구는 2009년 근처(부산 동래구 온천동 154-40)에 동래스파토피아라는 이름으로 족욕탕 한 곳을 더 열었는데 역시나 나이 드신 분들이 물 샐 틈 하나 없이 스크럼을 짜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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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족욕탕 입구 오른편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와 용각(龍閣)이 있다(부산 동래구 금강로124번길 23-17). 이곳은 신라 시대 때부터 온천수가 솟던 온정(溫井) 자리로, 온정개건비는 조선 시대에 온정을 고쳐 지음을 기린 비고 용각은 용왕신에게 매년 제를 올리는 누각, 용문은 그 누각으로 들어가는 대문이다.


노천족탕 입구 왼편에는 스파윤슬길이란 작은 길이 인공 시냇가로 조성돼 있다. 스파윤슬길이라는 이름은 온천을 뜻하는 ‘스파(spa)’에 해와 달빛에 비친 잔물결이라는 뜻을 지닌 ‘윤슬’을 붙인 표현이라 한다. 스파윤슬길 옆 담장에는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지금까지 동래온천의 변천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옛 사진들을 훑으면서 스파윤슬길을 걸었다면 그 역사의 증인을 만나 보는 것도 재밌다. 동래온천의 수호신이라는 할아버지상(像)이 그것이다. 한일병탄 직전인 1909년 이후 부산 시내를 돌며 지금의 온천장역 기준으로 동래온천 반대편 쪽에서 멈추던 전차가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1926년 동래온천장 안쪽까지 연장운행을 시작했는데, 할아버지상은 전차 개통 기념으로 전차 종점역(현 부산은행 건물 위치) 입구에 섰다고 한다. 1968년 전차 궤도 철거 당시 원래 자리의 북서 방향 대각선 건너편인 동래관광호텔(현 호텔 농심) 앞마당 남동쪽 끝자락(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공원로20번길 3 건물 오른편)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내용들을 확인하고 나서 스파윤슬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옛 사진들을 다시 보면 그냥 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기도 한다.


12_할아버지상.jpg 온천 할아버지상
09_자료사진_경편철도종점이었던온천장입구.png 경편열차 종착점이었던 온천장 입구


<목욕의 신> 배경 모티브, 허심청


한자로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해지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허심청(虛心廳)은 넓이가 4,297.54m²(1,300여 평)로 1991년 10월 개장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수용 가능한 인원은 남녀 약 3천 명이다. (부산 동래구 온천장로107번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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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_051253.jpg 허심청
20190621_050649.jpg 허심청 내부. 좀 더 자세한 스케치는 영상판에서.


허심청은 <목욕의 신>에 등장하는 금자탕의 실제 모델이다. 외양이 금자탕처럼 피라미드 형태로 돼 있지는 않아 뭐가 모델인지 알 수 없다 생각할 수 있으나, 막상 입구 안쪽으로 발길을 들이면 엉겁결에 아 그렇구나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허심상(虛心像)이 보여주는 아우라 때문이다. 현대미술풍 불상과 선녀와 용머리가 일관성 없이 뒤섞인 이 수호용 당간(幢竿, 불교의 법회에 쓰이는 기둥)을 보며 그냥 묘하게 ‘납득’했다. <목욕의 신> 속 금자탕이 보여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그냥 만화 속 과장만은 아니겠구나!


일단 후불제(목욕비 성인 9,000원)로 운영되는 욕장에 들어가면 동양 최대 규모라는 말에 걸맞은 공간을 만난다. 만화 속 금자탕 내부가 고스란히 눈앞에 서 있다. 만화 속에처럼 정면에 초거대 아프로 헤어 석상이 있지는 않으나 거대한 유리 천장과 규모, 구성 자체는 작품 속에서 보던 대로다. 다만 수영복 착용 혼탕이었던 만화와는 달리 남녀 욕탕이 구분돼 있다.


기왕이면 독특한 욕탕을 만나보는 게 애써 먼 길 온 보람을 챙기는 길이겠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4천 년을 살다 쓰러져 300년 이상 화산재나 흙 속에 묻혔던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고대희목탕(히노키탕)이나 겨울의 찬바람 아래에서 더 매력적인 노천탕, 동굴수련을 하는 기분을 주는 동굴탕, TV를 보면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영상탕, 제법 고압으로 쏘아내린 물을 맞을 수 있는 물맞이탕, 음료를 주문해 마시며 즐길 수 있는 반신욕탕 등 다양한 목욕 시설이 곳곳에 빼곡하게 배치돼 있다.


개중에 가장 개성 강한 곳으로 치자면 철학탕이 있겠다. 탕 한 편 동굴처럼 뚫린 공간 안쪽에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조명을 받는 두상이 있는데, 수염 사이의 입에서 물을 호쾌하게 토해내고 있다. 이 탕의 이름이 바로 ‘철학탕’이다. 그리스 철학자라 하기엔 닮은 사람이 없어 보여서 나중에 저게 누구신가 문의하니 운영사 측 답변으로는 소크라테스 얼굴이라 한다. 이마 넓이나 헤어스타일, 수염 등이 좀 안 닮았다 싶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땐 탕 안에 들어가 힘차게 물을 토해내고 계신 노 철학자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어째선지 입구의 허심상과 더불어 이곳에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기분이 들고 말았더랬다. 그래 왠지 <목욕의 신> 하면 이 아우라 이 분위기지!라는 기분이라고 할까. 소크라테스인 줄은 몰랐지만 나는 두상을 보며 괜히 “음, 이것이 동굴의 우상인가” 같은 말이나 뇌까리고 있었다.


<목욕의 신>의 주요 설정인 세신의 경우 1회에 성인 기준 24,000원을 내면 받을 수 있다. 남녀 욕탕에서 연결된 찜질방의 경우 2,000원을 내고 찜질복을 빌려 입고 입장할 수 있는데 찜질방 쪽 구색은 보석방, 황토방, 얼음방, 산소방 정도로 욕탕 쪽 규모에 비춰보자면 약간 단촐하다.


기왕 목욕을 하러 왔으니 제일 중요한 물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내가 주로 다녔던 온양, 덕산, 도고 등 충청도 쪽 온천들이 대체로 달걀 썩은 냄새가 살짝 풍기는 유황온천인데 비해 부산의 동래온천은 마그네슘이 주 성분인 약식염천이어서 색과 맛과 냄새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알려진 주 효능은 노천 족욕탕의 노인 행렬에서 볼 수 있듯 관절염과 류마티즘, 신경통 등의 완화지만 약효만 아니라 미용 면에서도 비누를 딱히 쓰지 않아도 피부가 매끈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늘 다니던 곳과는 다른 물이라 종종 생각날 것만 같았다.


목욕 후 먹거리 기행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출출해진다. 부산 하면 보통 돼지국밥과 밀면이 유명하지만 수소문해 보니 동래온천 쪽에서는 곰장어와 부산3대 짬뽕 중 하나라는 동운반점의 짬뽕이 유명하다는 추천을 받았다. 특히나 곰장어는 이 근처의 어느 집이나 대체로 맛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아예 곰장어집이 모인 구역도 있지만, 대체로 소(小)자가 3만 원대부터 시작하여 혼자 가는 여행에서 선택하기란 조금 부담스러웠다. 다음에 가족과 함께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이번엔 동운반점의 짬뽕을 선택하기로 했다.


허심청 근처에 자리한 동운반점(부산 동래구 온천장로119번길 7 1층)은 간판에부터 ‘부산 3대 짬뽕’이라 적고 있는 곳이다. 고기와 채소에 붙은 불맛과 더불어 얼얼하지 않고 감칠맛 나게 적당히 매운 국물은 근래 몇 년 사이 먹은 짬뽕 중에서는 확실히 발군이었다. 기본 사양이 6,000원인데 3,000원만 더 내면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낙지해물짬뽕을 먹을 수 있다. 음식 나오기 전에 가위와 집게를 줘서 뭔가 했는데 직접 잘라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기왕이면 낙지해물짱뽐으로 시켜 드시기를 권한다.


매운 걸 먹었으니 살짝 달달한 마실 거리로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동래온천과는 온천장역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근처에 자리한 모모스 커피(부산 금정구 오시게로 20)를 추천받았는데, 독특한 인테리어가 볼거리라는 말에 어느 정도인가 궁금했다. 도착해 보니 뭔가 예스러운 건물과 모던한 현대식 건물이 기묘하게 접붙어 있었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2지 석상에 대나무숲이 반겨주고 길을 따라 동이 나뉘어 있는 풍경이 마치 커피집이라기보다는 뭔가 고깃집 같다는 인상이었다. 물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11년 전 커피집으로 바뀌기 전에는 보신탕집이었다고 한다.


자리를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이용한 덕분에 굉장히 독특한 풍경을 즐기며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손님들도 담 안쪽의 곳곳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지역에서 유명세를 탔는지 몹시 북적이는 편이었는데 오전과 18시 이후 시간대에는 인파가 조금은 덜하다고 하니 고즈녁함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참고할 만하겠다.


18_동운반점_낙지해물짬뽕.png 부산 3대 짬뽕이라는 동운반점의 낙지 짬뽕
21_모모스_카페라떼.png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를 배출한 모모스커피의 라떼


* 글을 연재한 지 1년 뒤인 2019년, 하일권 작가는 영상판 <만화 속 배경 여행> 인터뷰를 통해 <목욕의 신>의 배경지가 동래온천의 허심청이 아니라고 밝혔다. 작가 본인 말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 배경지라 회자되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고 반론할 마음도 없어서 그냥 두었는데 그 내용으로 칼럼이 나올 줄은 몰랐다고.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허심청과 <목욕의 신>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사진 등을 보고 "실제 금자탕이 있다면 저런 곳이겠구나" "마치 <목욕의 신> 테마 파트 같은 걸?"이라 생각하며 즐거워했다고 하니 가 보면서 작품을 함께 떠올리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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