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떠나는 람사르 습지 도시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사람의 좁디좁은 시야를 지나쳐서도 흐르고 흘러 바다로 향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려는 곳의 풍경은 그래서 언제나 조용한 의지로 가득하다.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을 굽히기도 마다하지 않는 의지, 나아가기 전 끌어 모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의지, 그리고 그 위에서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생명들의 의지. 그 모든 의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키고 보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순천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순천과의 인연
나와 순천의 첫 인연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동생과 둘이서 전라도 남쪽 여행을 하기로 하고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을 시작점으로 잡은 이유는 동생이 “순천만 쪽에서 보는 일출이 꽤 괜찮대!”라 한 말 때문이었다. 차가 아직 없었던 때라 밤기차를 타고 달려 새벽 네 시 무렵 순천역에 도착했다.
내 여행 스타일은 대체로 뭘 딱 정해놓기보다 일단 가서 부딪치는 쪽이다. 한데 그 때에는 그런 나 치고도 유난히 준비를 안 한 채로 길을 나섰다. 스마트폰도 없던 때에 지도도 없고 관광지로서 본격적으로 조성되지도 않았던 곳을 무작정 도와줄 이도 없는 새벽에 찾았으니, 결과적으로 꽤 무모했다. 날씨마저 도와주질 않아 결국 일출을 보는 데에는 실패하고 왔던 길을 고스란히 걸어 돌아 나와야 했다. 일출보다 일몰이 더 유명하단 건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 동생과 내가 걸었던 곳은 순천만 서쪽의 간척용 방조제 쪽이었다, 막상 가장 보고팠던 건 볼 수 없었으나 순천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무진기행>의 그 희뿌연 느낌만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었다. 이 때의 실패 탓에 아무리 그래도 여행갈 곳의 중요한 정보는 표면적인 부분만이라도 알아보게 됐으니 여행자로서 순천과의 첫 만남에서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순천과의 인연은 이후로도 시민단체에서 만화 도서관을 설치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강연 초대를 받기도 하고, 일 외에도 정원 박람회를 보기 위해 들르는 등으로 알음알음 이어졌다. 또한 순천은 국립 순천대에 만화 학과가 있고, 지역 청년들이 문화 운동의 한 범주로 만화를 놓고 고민하며 연구모임을 연다든지 이후 지역 웹툰 작가 양성을 꾀하는 스튜디오를 시 차원에서 설립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 만화인의 입장에서도 인연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순천만을 소재로 한 만화가 등장했다. 2009년 끝자락,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황금짱순이>가 그 주인공이다.
순천만 습지의 생명들을 이야기하다, <황금 짱순이>
<황금 짱순이>는 영화 <애기섬>을 만든 장현필 감독이 쓴 이야기를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 <도바리> 등을 그린 만화가 탁영호 선생이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2012년에는 인형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다분히 동화스러운 이야기와 전개를 띠고 있어, 지원사업 당선작임을 감안하더라도 네이버 웹툰 연재작 가운데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주로 선 굵은 사회적 화두와 민초들의 이야기들을 그려온 탁영호 선생의 필체와 동화적인 이야기가 다소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품은 행동력과 의지로는 최고인 짱뚱어 ‘짱순이’와 겨울을 나기 위해 순천만을 찾은 철새 흑두루미 ‘두룩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서로 다른 성장 환경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끝에 두 아이가 순천만에서 친구의 연을 맺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천만 습지의 대표 격인 물고기 짱뚱어는 겨울잠을 자는 독특한 물고기로 뻘과 갈대밭을 노상 신나게 뛰놀다시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흑두루미는 역시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순천만까지 날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사실 짱뚱어에게는 천적이지만, 작품 속에서 이 둘이 모종의 우정을 쌓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걸 바라보는 것도 재미다.
실제로 작품은 연안습지와 하구의 S자 해수로를 비롯한 순천만의 풍경을 고스란히 잘 보여주지만, 이 작품을 조금 더 독특하게 만드는 건 이러한 풍경이 소중하니 잘 지켜달라고 인간들에게 호소하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순천 출신인 장현필 감독은 이 작품을 시작한 이유를 "순천만을 다녀가는 사람들은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순천만을 가슴에 담아가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상 작품 속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하는 건 각자 자기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과 그 과정에서의 희생, 그리고 생각(즉 작중의 ‘종’)이 다른 이들과의 연대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순천만 연안습지가 지금만큼 유명해지게 된 지는 아주 오래된 편이 못 된다. 옆의 여수와 광양에 이어 공장지대가 들어서려 든 데 이어 지질 특성상 배수가 잘 안 되어 곧잘 홍수 피해를 입었던 탓에 갈대밭을 밀어내고 뻘을 파 없애려던 시기가 있었는데, 1990년대 초중반 무렵이다.
이 때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며 생태조사를 벌이며 이 연안습지가 환경의 보고임을 밝혔다. 작중 동물들, 특히 짱뚱어들은 황금색 가루를 묻히고 되레 눈에 띔으로써 시선을 잡아 끈 짱순이를 비롯해 인간의 눈을 끌어 모아 미디어 여론전을 꾀하기까지 한다. 이는 단순히 우스개로 넣은 장면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실제로 순천만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보호를 받게 되었는지를 우화와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런 연유로 <황금 짱순이>는 단지 환경 보호를 외치는 만화가 아니라 순천만의 과거와 현재가 시사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만화로 볼 수 있다. 작품을 읽은 후 순천에 들르게 되면 기반 산업이 딱히 없는 순천이라는 작은 도시가 인구 대비 10여 배 이상의 연간 여행객을 유치하게 됐는가를 장밋빛 성공사례 이면의 치열한 과정까지 몸소 느껴볼 수 있다.
순천만 돌아보기
순천만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역시 S자 해수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몰 낙조다. 이런 풍경 덕에 순천만은 2006년에 한국관광공사 최우수 경관 감상형지로 선정되었을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황금 짱순이>를 읽고 나면 조금 다른 장면들에도 눈이 가게 된다. 일례로 푸드덕거리며 시종일관 갈대숲 사이를 오가는 철새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정말 끊임없이 꼬물거리며 뻘밭을 노니는 짱둥어들은 개펄이 그저 가치 없이 버려진 곳이 아니라 생명이 움직이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순천만 습지는 정원박람회를 기점으로 기반 시설들이 제법 잘 조성된 덕에 이용이 상당히 수월하다. 갈대숲과 개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람하기 편하게 꾸며놓았다. 습지 입구에서 용산전망대까지의 도보 경로는 순천만 하면 떠오르는 풍경의 일체를 감상할 수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 매력적이다. 목재 다리로 잘 조성된 길을 따라 갈대군락지를 따라 걷다가 약간의 산길을 더 걸으면 용산전망대에 닿게 된다. 순천 동천을 따라 순천만 바다까지 직접 나가보고 싶다면 배를 타면 된다.
작중에서 습지와 더불어 곧잘 등장하는 섬이 하나 있는데 이름 하여 똥섬이다. 학섬이나 솔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순천만 안쪽에 자리한 작은 섬이다. <황금 짱순이>에선 마지막회에서 짱순이가 흑두루미 형제를 타고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 이 섬을 보기 위해서는 순천만 습지 동쪽으로 돌아 와온해변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용산전망대와 더불어 와온해변 쪽의 똥섬도 중요 포인트로 꼽힌다. 이 섬에는 한 때 주막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한편으로는 개펄로 작업 나간 이들의 화장실(?)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똥섬을 조망하기 쉬운 숙소로는 순천놀펜션과 순천만 에코비치캐슬이 꼽힌다.
작품의 초엽 즈음에는 뚝방 같은 공간도 등장하는데 내가 일찍이 일출 보겠다고 새벽에 왔다 허탕 쳤던 그 서쪽의 간척용 방조제 쪽이다. 농경지와 함께 쭉 뻗어 있는데 관광객들이 많을 만한 길은 아니어서 조용히 걷기에 오히려 좋다.
이래저래 걷고 돌다 보면 허기가 질 법도 한데, 전라도 음식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특히 순천은 어딜 가도 밥이 대체로 맛있는 편이다. 관광지에 인접해 있는 음식점은 그저 그렇다는 편견과 달리 순천만 근처의 밥집들은 푸짐하고 맛있다. 추천하는 밥집은 순천만길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남도밥상’(전남 순천시 동너리길 8). 짱뚱어탕과 꼬막정식이 주 메뉴인데 짱순이를 생각하면 짱뚱어탕을 선택하기는 살짝 곤란한 기분이 들 만도 하다.
동천을 따라 순천 시내를 바라볼 만한 곳, 죽도봉 공원
순천만을 이루는 강은 순천 동천이다. 강이라기엔 조금 작은 편이어서 ‘천’이 붙어 있지만 순천의 동쪽을 남북으로 굽이굽이 가로지르며 바다로 나아간다. 순천만 습지는 동천이 힘겹게 이고 지고 온 진흙들이 쌓여 만든다.
순천만 하면 바다와 만나는 지점만 생각하기 쉽지만, 기왕 습지의 의미를 되새기며 동천의 자태와 순천 시내를 조망해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죽도봉 공원이다. 죽도봉이라는 이름은 대나무(竹)가 울창하고 봉우리가 섬(島)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실제로도 그야말로 도시에 떠 있는 섬 같은 인상을 주는 죽도봉 공원은 순천의 유일한 공원으로 시민들의 호젓한 산책 코스 노릇을 있다. 정상 부근에는 강남정이라 이름 붙은 팔각정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는 카페도 있어 가벼운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이곳에서 시내를 가로지르는 동천의 보고 있자면 저 끝에 순천만과 바다가 있겠구나 하는 감상에 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