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멀미가 심해 자전거로 하루 20km 가까이를 자전거로 통학하던 때가 있었다. 자전거 도로도 딱히 없던 그 시절 차도 위에서 정말 아찔한 짓을 자주 해서 혼나기도 다치기도 참 많이 했다. 학교는 싫었어도 자전거 안장 위에서라면 어디든 날 듯이 달릴 수 있었던 그 느낌만은 지금도 가끔 그립다. 이번 여행지는 자전거에 관한 로망을 대리충족하고 싶을 때 반드시 꺼내드는 만화 <내 파란 세이버>의 배경지인 충북 영동이다.
“날고 싶은 소년의 자전거 성장 드라마”
<내 파란 세이버>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그려낸 만화 장인 박흥용의 작품이다. 군부독재기에 가상 북유럽국가를 무대로 성공한 시민 혁명을 그렸던 김혜린의 <북해의 별>이 필독서였듯, 이 작품 <내 파란 세이버>는 ‘자출족’ 즉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서와도 같은 만화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자전거를 소재로 한 유일한 만화로 꼽히는 이 작품은 자전거 경주와 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신체 묘사로도 정평이 났다.
작품의 무대는 1970년대, 아직 일제강점기 최고의 조선인 자전거 선수 엄복동과 역시 일제강점기 한국 상공에서 비행한 첫 한국인 비행사 겸 독립유공자인 안창남이 회자되던 시기의 충청북도 영동이다. 작품은 작가 박흥용의 고향이기도 한 영동을 무대로 중국요리집 아들 최대한이 안창남처럼 비행기를 몰겠다는 꿈을 품었다가 서울서 전학 온 여학생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에 꽂히며 졸지에 자전거의 길에 들어선다.
비행기의 이름이었던 세이버의 이름도 몰라 ‘쌕쌕이’라 부르던 비행기의 조종간 대신 자전거 핸들을 쥐고 다니기 시작한 대한이는 이윽고 타고난 체력과 체격, 승부욕과 남다른 간 비대증까지 갖추어 여러모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이클 부 가입 여부를 걸고 사이클 부 선생과 벌인 시합에서 동네 거지를 치어 죽이는 사고를 내면서 그만 자기 손으로 앗은 생명의 무게에 짓눌리고 만다. 작품은 이렇게 자전거 시합을 묘사하는 것 외에도 소년의 성장은 물론,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과 성찰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이와 같은 철학적 주제 의식은 작가의 이후 작품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그의 나라> 등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박흥용이라는 만화가를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주의 만화가로 분류하게 하는데, <내 파란 세이버>는 그와 같은 성찰의 도구로 자전거를 활용하고 있다. 대한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자전거를 탄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다닌다.
한편 <내 파란 세이버>가 건드리는 부분은 인물의 내면만이 아니다. 경륜이 정식 출범(1994) 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 그 산업화에서 밀려난 산골 마을에 자전거 사업체와 각종 이익집단들이 화제가 될 만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아직 법 테두리 바깥에 있던 자전거 경주 도박, 즉 사설 경륜 사업을 꾀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이 사기 진작과 재정 확보를 위해 경륜을 도입해 성과를 내는 모습을 지켜 본 이들이 이 땅에서도 결과를 기대하며 벌어진 일이다. 대한이의 적수로 등장했던 동네 형 영식이는 반독재 투쟁을 하던 운동권 연인의 도피자금을 대기 위해 불법 경륜에 손을 댔다가 하반신 불수가 되고, 이는 곧 대한이로 하여금 자전거를 타는 이유를 덧붙이는 역할을 한다. 사실 대한이네 가족이 편모 가정인 까닭도 아버지가 민주화 투쟁을 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렇듯 인물들의 행동 원리 아래에 시대 배경이 만든 어른의 사정들을 촘촘히 깔아놓음으로써 소년 소녀들의 성장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는 한편, 한국 사회의 한 부분을 극단적인 리얼리즘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올라섰다.
영동의 길 따라 가기
영동은 박흥용 작가의 출생지기도 하다. 1961년에 태어났으니 작중 배경은 작가의 소년~청소년기를 고스란히 관통한다.
작품 속에서는 황간, 대전을 비롯해 영동 주변 지역들도 곧잘 등장하지만 주 배경이 되는 곳은 영동의 크고 작은 길들이다. 작품의 배경이 된 시점, 그리고 작품이 출간된 시점에서도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상황인지라 작품 속 풍경이 그대로이길 기대하진 않았다. 지역이 그대로이기만 해서도 안 되겠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조금 당황하긴 했다. 작품 속 배경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길’인데, 포장을 새로 한 걸 감안해도 느낌이 달랐다.
사전에 아무리 지도를 펼쳐놓고 조사를 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곳을 찾기 어렵더라니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실제 배경이 되었음직한 장소들도 모습이 다르긴 매일반. 일례로 영동역도 1999년에 신축을 하여 모양새가 작품 속 묘사와는 적잖게 달라져 있다. 배달에 이골이 났을 중화요릿집 주인을 비롯해 이곳저곳 수소문을 거치다 결국 자존심 문제로 가장 쓰기 싫었던 반칙인 ‘작가님께 물어보기’를 시도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영동의 이곳저곳을 짜깁기해 머릿속에서 조립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작가가 태어나 자란 곳의 이야기인데다 묘사가 워낙 현실감 넘치게 돼 있었던 탓에 으레 실제 공간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실제 그대로는 아니었던 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설 자전거 대회라는 소재도 영동과 역사적으로 반드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대 배경 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동원한 셈인데, 실제로 국내 자전거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게 한참 뒤임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보여준 자전거 묘사는 원래의 역사와는 별개로 굉장히 선구적인 면이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들이 왜 이 작품을 성서처럼 여기는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물론, 일본이 전후 복구와 재정마련을 위해 경마를 응용한 경륜을 도입해 성과를 냈다는 부분은 사실이고 작품은 이를 응용해 영동의 당시 현실적인 부분과 맞물려놓은 셈이다. 영동에서는 그 시절에 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거의 없어 통학과 출퇴근, 배달 등이 모두 자전거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어린이용 자전거라는 게 애초에 없었던 탓에 어른용 자전거를 고쳐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는데, 이 부분은 작품 초반에도 등장하는 바다.
어쨌든 그럼에도 굵직한 부분에선 모델이 된 공간들이 있을 터여서 그 지점을 물어 찾아가 보았다. 먼저 대한이가 어린 시절 포대나 짚단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던 곳은 양강면 지촌리다. 작중에서는 ‘읍내에서 10리길’ 정도로 묘사된다. 작가의 말로는 작품 속에서 절벽처럼 깎아내린 듯한 자리와 그 아래 일대에는 이후 과수원이 들어서 과거의 흔적은 없다고 했다. 현지에 도착해 1970년대를 이야기해 줄만한 노인들을 만나보고자 했지만 추운 날씨와 생뚱맞은 외지인이었던 탓에 생각보다 협조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맑은 내와 호젓한 저수지를 끼고 마을 셋이 연이어 산 속 깊숙한 위치에까지 자리하고 있는 풍경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놀았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대한이가 거지를 죽인 죄책감에 마음을 닫았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래 근처의 사이클 선수들을 긴장시키기 시작하는 장면부터 등장하는 꼬불꼬불 고갯길은 범화리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길이다. 도로 번호로는 505번 국도로, 조동리를 거치는 49번 국도 쪽의 도마령과 더불어 영동을 충북의 알프스라 부르게 만드는 공간이다. 븍쪽에서는 지난 겨울 들어 눈다운 눈을 제대로 구경하질 못했는데 정작 1월 하순에 들른 중부 산간의 갓길엔 살얼음이, 길 옆과 시야 저 편 산등성이엔 눈이 남아 있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굉장히 위험했다. 몰고 간 차가 겨울 사양 타이어를 달지도 않았던지라 핸들을 쥔 손에 긴장으로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폴더처럼 꾸닥꾸닥 접히는 길을 운전할 때에는 엔진 브레이크를 동원하면서도 잔뜩 겁을 먹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길을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가면 스키장으로 유명한 무주가 있다. 와본 적 없던 때엔 남쪽에 어떻게 스키장이 있나 늘 의문이었는데 길을 한 번 타 보고 나니 알 만 했다. 지도를 펼쳐들고 보니 주변의 산 높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발 1000m 단위를 기록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도덕재는 해발 450m, 도마령은 800m에 있다.
이쪽 두 고갯길은 알고 보니 산악자전거 동호회에서도 꽤 애호하는 코스인 모양이었는지 자전거 동호인들의 인증샷이 인터넷에 곧잘 올라와 있었다.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는 그래도 거북이처럼 조심조심 안전하게만 운전한다면 잘 넘을 수 있겠으나 자전거 코스로 생각하면 이만한 업힐&다운힐은 정말 끔찍한 난도를 자랑한다 할 법하다. 대한이는 이런 곳을 매일 돌아다니며 체력을 다진 셈이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싶다면 웬만하면 봄꽃이 필 즈음 방비를 튼튼하게 하고 움직이기를 강권하는 바다.
길을 돌아 돌아 다시 영동군 안쪽으로 돌아가니 어느덧 해가 돌아 눕기 직전이다. 영동역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만 움직이면 영동고등학교와 중학교 교정이 나온다. 작중에서 대한이가 사이클부로 다니게 되는 학교다. 작중에선 ‘영동여자중고등학교’로 나오는데, 마침 들렀을 때 우연히 만난 선생님에게서 옛날에 두 학교가 통합됐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연혁을 보니 1987년 영동여중과 영동여고가 폐교되며 각기 영동중, 영동고로 통합되었다. 현재 학교에는 트랙은 없고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영동고등학교 뒤쪽으로 가면 삼봉천이 흐르고 있다. 강이라기보다는 개울에 가깝다. 영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서쪽의 영동천과 만나는 이 개울은 영동역 쪽을 거쳐 지나가는 경부선 철도와 만난다. 작중에서는 인물들이 하천 위로 지나가는 철길을 직접 걷기도 하고 자전거로 철길을 달리는 장면도 등장하며, 굴다리 아래도 주요 인물들이 교차하고 시비가 붙는 등 중요한 배경지로 쓰인다. 기찻길은 지역에선 1980년대에만 해도 곧잘 학생들 이동 통로로 쓰였다. 어린 시절엔 나도 곧잘 철길을 걸으며 놀았지만 지금은 2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를 살게 된다.
철길 위로 지나다니는 기차를 구경하며 개울을 건너 기찻길 옆을 따라 걷다 보면 민가를 지나 작중 황천고개의 모델이 됐음직한 도로를 만난다. 영동과 황간 사이를 잇는 영동황간로다. 개울 건너편으로 넘어가 철길을 따라 300m 가량을 걷다 보면 경작지에 가로 막혀 큰길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만난 도로는 비교적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일 만큼 크고 넓게 잘 닦여 있지만 영동읍 방향으로 주변에 무덤 여럿이 조성돼 있고 일부는 관리가 거의 안 되어 있어 해가 떨어질 때쯤 보니 제법 을씨년했다. 옛 길의 흔적은 이미 없으나, 영동을 빠져 나가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이 도로를 다시 한 번 밟으며 어린 시절부터 숱한 시합을 벌이며 페달을 밟았을 대한이를 생각했다. 돌아 나오는 길, 작품 속 배경에는 없었던 KTX 선로가 길 너머 저만치에 뻗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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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파란 세이버> 개정판 1~5 (완결)
박흥용 / 바다그림판
아직까지도 국내에선 유일하다시피 한 자전거 전문 만화. 하지만 스포츠 장르로서만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작가주의적 작품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9년에 열린 제1회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