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만화 벽화가 곳곳에, 여수 고소1004 벽화마을

by 서찬휘
수정됨_05_고소1004벽화마을_9구간위쪽계단.jpg


여수 하면 여수 엑스포. 그리고 한 때 장사를 위해 찾았던 곳. 내게 여수는 이렇듯 도시를 진득하게 돌아보기 보다는 다소 단편적인 목적을 위해 그 때 그 때 찾았던 곳이었다. 어느 노래 덕에 밤 바다가 유명해진 도시지만 막상 밤까지 있어보진 못했던 그런 곳. 이번 여행에서는 차 안에서만 지나가며 보았던 여수의 거리와 골목 풍경들을 사람이 걷는 속도로 눈에 담아볼 수 있었다.


여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로 우뚝 서 있는 허영만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허영만 선생은 오래 전 철도 여행을 소재로 한 단편 만화를 통해 청년기 오랜 시간 입석으로 완행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자전적 이야기를 보여준 적이 있고, <식객>으로 유명해진 이후엔 TV 프로그램 등지에서 고향에서 자주 찾던 단골집 등을 소개하기도 하는 등 고향 이야기를 꾸준히 남겨 오고 있다. 여수를 <만화 속 배경 여행>의 여행지로 꼽은 까닭은 그 가운데 선생의 만화가 벽화로 그려진 곳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바로 여수 고소동의 1004 벽화 마을이다.



고소동 천사 벽화마을에 관하여


수정됨_03_고소1004벽화마을(이순신광장문)_1.jpg


고소동 1004 벽화마을은 여수 앞바다와 접한 언덕 마을로 본래 여수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이름인 이순신 장군이 작전을 짜고 명령을 내린 ‘고소대’에서 유래하였고, 그 탓에 진남관과 타루비를 비롯해 마을과 그 주변에 이순신과 관련한 유적이 산재해 있다. 원체 여수 자체가 전라좌수영이자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하고 거북선을 처음 출정시켰던 곳이기도 하여 이순신과 얽힌 일화로는 통영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곳이고 이순신 광장, 거북선 대교 등등 도시 곳곳의 지명에도 이순신 장군을 이용하고 있다. 고소 마을은 그러한 장군의 흔적과 자취를 바다와 함께 널리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소마을은 오래된 언덕 마을로 다소 낙후된 면이 없지 않았으나 2012년에 여수에서 엑스포가 열리면서 시와 고소동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벽화마을로 조성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썼던 진남관(당시 명칭 ‘진해루’)을 서쪽 꼭지점으로 시작해 동쪽 꼭지점인 여수 해양공원까지 1004m가 나온다는 점에 착안해 ‘1004 마을’이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한다. 구간은 현재 모두 여덟 개로 조성돼 있으며 진입구도 그에 따라 네 곳에 산재해 있다. 원래 있던 언덕배기 주택 사이의 골목에 조성된 벽화마을의 특성상 한 번에 모든 구간을 다 돌아보려면 일부 봤던 곳을 다시 봐야 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돌다 보면 곳곳에 자리한 전망 포인트와 유적들, 곳곳의 볼거리들을 빠짐없이 감상할 수 있다.


마침 여수를 찾은 날은 전날에 이어 햇살이 쨍하니 맑은 날이었다. 일본 쪽으로 향한 큰 태풍이 구름을 싹 몰고 간 덕인지 하늘은 화창했지만 여파가 있는지 바람만은 상당히 셌다. 전날 순천만을 다녀왔던지라 순천에서 전라선 무궁화호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으로 이동,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순신 광장에 도착한 뒤 광장 근처에 자리한 입구를 통해 제9구간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자리한 지도를 보면 1~8구간이 순차별로 이어져 있지는 않아 어차피 시작한 곳에서 끝까지 한 번에 볼 수는 없다고 판단, 맘 편하게 8구간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며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한 노신사께서 이 좋은 곳을 혼자서 구경 왔느냐면서 웃어주셨다. 그러게요 아내와 아이랑 같이 왔으면 보여줄 게 많았을 텐데요 하며 웃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바닷가가 바로 앞에 있는 언덕 마을 답게 계단이 매우 가파라 아이를 데려올 때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할 듯 보였다.


통영 동피랑의 성공 이후 도처에 벽화마을이 난립했지만 어설픈 곳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은 몇 곳 남지 않았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 고소동 1004 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의 벽화는 관에서 보여주기를 위해 주도한 개발이 아니라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스스로 성금을 모금해 제작했다고 한다. 그 덕인지 단지 예쁜 그림에서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구간마다 다른 주제를 담아 지루하지 않은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전임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노출됨으로써 박제된 관광지의 한계점을 상쇄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외지인임이 분명해 보이는 이들 사이에서 조용조용히 자기 일상을 영위하다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을 걸고 안내를 해 주기도 했다. 나도 이날 몇 차례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데, 유난히 따스한 인심에 절로 흥이 날 정도였다. 게다가 주민들이 돈을 모아 길고양이 사료통을 마련해 놓고 있다거나 한 구역의 터줏대감 같은 동네 고양이를 아예 벽화의 주인공으로 그려놓는다거나 하는 점은 이곳의 마을 공동체가 보여주는 유대감과 정서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수정됨_06_9구간과6구간분기점_2.jpg
수정됨_04_고소1004벽화마을_안내도.jpg


제3구간에 자리한 허영만 만화 벽화


벽화골목길은 모두 아홉 구간으로 되어있는데, 각 구간별로 동심의 세계(제1구간), 바다와 여수 풍경 이야기(제2구간), 생활 이야기(제3구간), 동물과 판타지(제4구간), 여수의 어제와 오늘(제5구간), 사계절 자연 풍경(제6구간), 이순신 장군 일대기(제7구간), 여수8경(제8구간), 바다 속 이야기(제9구간)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나는 이 가운데 바다 속 이야기를 담은 9구간으로 시작해 진남관과 타루비가 있는 7, 6구간을 거쳐 8, 5, 4, 3 구간을 굽이굽이 돌아본 후 1구간 끝자락까지 갔다가 돌아나와 3구간으로 마무리지었다. 문은 1구간의 종포문, 3구간의 낭만포차문, 9구간의 이순신 광장문과 7구간의 진남관문 등 네 곳이 있는데 지도를 보고 마음이 가는 대로 코스를 짜서 움직이면 된다. 전체를 다 걸어 보고 싶다면 어차피 몇 곳은 다시 걸을 생각을 하고 끝에서 끝인 1구간에서 9구간 혹은 그 반대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곳곳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물론 오포대와 같은 근대 유적, 달빛갤러리 같은 문화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고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이순신 장군과 얽힌 유적인 고소대, 복싱 세계 챔피언 김기수 선수의 체육관 등 들러볼 만한 곳들이 적잖게 산재해 있다.


허영만 벽화 골목은 이 가운데 제3구간 한복판 볕 잘 드는 공터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의 벽화 갤러리”로 이름 붙은 이곳은 허영만 선생의 <식객>을 시작으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타짜> <꼴> <제7구단>(훗날 <미스터 고>라 바뀐 제목으로 영화화) <날아라 슈퍼보드> <꼬마대장 망치> <세일즈맨> <사랑해>에 이르기까지 허영만 표 만화의 과거와 현재를 쭉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작품을 소재로 삼아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기 보다는 작품들의 대표적인 표지 그림을 벽화로 옮겨놓은 경우가 많지만, 허영만 선생이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그 때 그 때의 시대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만화 소재로 삼아 온 바가 늘어선 그림들 사이에 고스란히 읽히는 점이 재밌었다. 한편으로 지금 세대들에게 <식객>과 <타짜>야 어떤 형태로든 잘 알려져 있어도 <세일즈맨>이나 <꼬마대장 망치>는 기억에 그다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허영만 선생이 얼마나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는가가 새삼 실감이 났다. 골목에는 표지 외에도 허영만 선생이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겪었던 일화들을 담은 자전만화들도 일부 벽화로 옮겨져 있어 잔재미를 주었다. 허영만 만화의 오랜 독자는 물론 근래 들어 <타짜>와 같은 영화를 접했던 이들도 “이것도 허영만 거였어?”라며 환기해 보는 기회가 될 만하다.


만화를 소재로 하여 공간을 꾸미는 일은 어떤 형태가 됐든 만화인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허영만 벽화 갤러리를 보며 아쉬움이 다소 남는 건 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고소동 1004 벽화 마을의 안정감 있고 따스한 구성은 유적들과의 조화라는 측면까지 포함해 어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 일부로 들어가 있는 허영만 벽화 갤러리에는 ‘허영만’이라는 인물에 관한 별다른 언급이 담겨 있지 않았다.


소주 광고에까지 나올 정도였던 그야말로 ‘국민 만화가’ 허영만을 누가 모를까!라고 할 수야 있지만, 막상 길을 혼동해 주민들에게 “허영만 벽화가 어느 쪽일까요?”라 물을 때 “그게 누구야?”부터 튀어나오는 상황을 직접 겪고 보니 아차 싶은 것이었다. 벽화 갤러리에는 여수를 고향으로 하는 허영만이라는 만화가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작품들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 서 있는가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모든 대중문화가 그러하지만 일가를 이루었다는 이라고 국민 전부가 아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곳 출신의 만화가가 남긴 그림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맥락을 벽화와 함께 소개를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다소 남는다.


허영만 만화 벽화가 자리한 곳은 고소 마을 가운데에서도 특히 공터 공간이 널따란 편이며, 공터 앞이 탁 트여 바다를 조망하기가 좋다. 여수를 찾은 이들 가운데 허영만 만화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캔커피 하나쯤 사들고 이곳을 찾아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조용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수정됨_18_고소1004벽화마을_안내도(허영만벽화쪽).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8.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9.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0.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1.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2.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3.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4.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5.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6.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7.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8.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19.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0.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1.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2.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3.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4.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5.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26.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2.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3.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4.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5.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6.jpg
수정됨_19_허영만만화벽화_07.jpg



* 허영만 벽화마을의 조성과 관련하여서는 다소 비판점이 자리할 수 있는데, <타짜>가 만화판이 아닌 게임판 <피망 타짜> 화상을 옮겨놓은 것도 문제지만 벽화마을 제호 옆에 자리한 그림이 다름아닌 이두호 선생의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작가 고향에 자리한 테마 공간임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실례가 아닐 수 없는 대목이다.


수정됨_20_허영만벽화갤러리앞_바다조망_1.jpg
수정됨_24_제1구간_3.jpg
수정됨_22_거북선대교_조망.jpg
수정됨_23_내리막길.jpg
수정됨_24_제1구간_1.jpg
수정됨_24_제1구간_2.jpg
수정됨_21_고양이.jpg


이전 17화윤미경 <레일로드> 기차 테마 여행, 철도박물관·서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