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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찬휘 Mar 15. 2023

RM의 스페인 인터뷰를 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 까닭

서찬휘입니다.


아내가 BTS의 팬입니다. 덕분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BTS 노래들은 웬만큼 들어보았고, 그 가운데 리더 격인 RM의 행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굳이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저는 BTS의 팬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누구에게도 팬이 아닙니다. 만화가들에게조차 팬심이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의 작가라는 존경심을 표할 뿐이죠. 그러니 팬이 아니라는 말이 곧 관심 없다거나 싫어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좋아하는 작가와 가수는 있습니다. 이젠 팬 씩이나 할 생각은 없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의 '지지'는 문재인이라는 인물에서 끝났습니다. 더 이상 진심으로, 또 한 인간으로서 지지하는 정치인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그러나 가끔 새삼 이 사람은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RM이 그래요.


각설하고, RM에게 관심이 갔던 까닭은 <호르몬 전쟁> 때의 BTS와 지금의 BTS, 랩몬스터에서 지금의 RM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단단해져가는 과정에 많은 공부를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알쓸인잡>에서 가끔 노출되는 빈 공간에 어라 이걸 모르나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마 거기까지 포함해서 이 사람은 어느덧 비어 있는 부분을 곧 채우겠지 하는 믿음이 생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뭐라고 할까 조금 시샘이 들기도 하더군요. 이래서 공부 잘 하는 것들은-이란 심정 말입니다. 머리가 좋은데 멍청한 행동으로 향하는 사람은 자기 머리를 이용해 남의 믿음을 이용하고 배반할 마음으로 충만하기 때문일 텐데, RM은 적어도 멍청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그게 백종원 같은 사람이 말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사람들이 좋게 보니까 그 쪽에 자신을 맞추어 가다 보니 그렇게 살게 된다' 쪽과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지만요. 결과적으로 대중 앞에 선 대중문화계 남성으로서는 쉽게 선택하지 않을 길을 가게 된 듯합니다. 드물게 '반성'도 해 가면서, 그리고 현재의 자기에 안주하지 않고, 또한 돈을 과시하기보다 자신의 의미를 생각해 가면서 말입니다. 그건 공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공부 같은 것 말고. 계속해서 세상을 끊임없이 공부해간다는 느낌이지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알고,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기가 서 있는 발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생각하면서. 도서관에 책도 기증하고 말이죠. (그 도서관이 있는 시에서 살고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가부터 안 멋졌던 힙합 씬(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일)의 수많은(전체는 아닌) 래퍼 나부랭이들에게 무시 당하던 아이돌 그룹의 래퍼는 어느 사이엔가 이렇게나 멋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그룹이 이렇게나 단단해질 수 있었겠구나 하기도 하지만, 지지자들도, 팬층도 꽤 단단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정치도 그렇고 아이돌 그룹도 그렇고- 지지자들은 지지 대상을 따라갑니다. 과격한 경우는 늘 있고, 평균을 놓고 볼 때엔 결국 지지 대상의 생각과 성향이 고스란히 이어지더라고요. BTS는 그 점에서는 훌륭한 편입니다. 아닌 경우가 참 많죠. 그리고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리더인 RM이 참 잘 하고 있구나 싶은 것이죠.


이번에 한 스페인 언론과 진행했다는 인터뷰에서 RM의 답변이 화제입니다. 뭐 '우문현답'이라기엔 질문 자체가 그리 멍청하진 않았는데, 다만 서유럽에서 한 때 식민지로 노났던(!) 나라 사람이 한국인에게 던진 질문이라는 전제가 있지요. 사실 저는 굉장히 놀랐는데요. 이런 류 질문은 사실 엄밀히 말하면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질문의 전제를 이렇게 놓겠지요. 아, '선진국들인 서양인들 눈에 미진해 보이니까'. 그런데 RM은 여기에 식민지와 분단을 언급했습니다. 뒤통수를 엄청나게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자체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인과를 언급하고 나아지고 있는 지점도 빼놓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우리를 낮추지 않는 형태로 세련된 답변을 했기 때문이죠. 이 답변이 기자를 힐난한 건 아니고, 비꼰 것도 아니지만 읽는 서양인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답변을 즉답으로 한 RM의 깊이에 다시 한 번 감탄합니다. 이건 분명 독서와 사색의 힘이겠지요.


마침 저는 제가 진행하는 대학 수업의 토론 주제로 'K-' 딱지를 지정해두었습니다. 몇 주 뒤면 이 이슈로 학생들을 떠들게 해 볼 참입니다. 토론이 끝난 후 어떻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던 차인데, RM이 거의 마스터피스에 가까운 말을 해주었습니다. K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국뽕과 자조, 또 좌절과 과도한 방어기제 사이에서 가장 알맞은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고맙네요. 즐겁습니다.



***


(인터뷰 내용)


기자: (인디고 앨범 수록곡 ‘Yun’의) 노래 시작이 “F*** the trendsetter. Back the time, far to when I was nine. 좋은 것과 아닌 것밖에 없던 그때. 차라리 그때가 더 인간이었던 듯해”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K-POP의 엄청난 성공에는 아티스트를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점도 있다는 의미인가요?


RM(방탄소년단): 한국 아티스트는 굉장히 어린 나이에 그룹의 한 멤버로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개인으로 살 시간은 거의 없죠. 하지만 그런 삶이 k-pop을 빛나게 합니다. 그들은 아주 젊고 엄청난 노력을 해요. 오직 20대 때에만 가질 수 있는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완벽한 안무를 위해, 뮤직비디오를 위해, 그리고 음악을 위해 자신과 싸우고 마침내 폭발하고, 빅뱅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멤버들은 20대와 30대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BTS에 쏟았죠. 성공, 사랑, 영향력, 파워를 얻었지만 그 후에 남는 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바로 음악.


기자: (기획사의) 시스템이 비인간적인가요?


RM(방탄소년단): 회사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도 일부 동의하는 점도 있지만, 나중에 언론에서는 거두절미하고 “젊은이들을 망가뜨리는 끔찍한 시스템”이라고 보도할 테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점이 바로 이 산업을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젠 계약이라든가, 정산,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전담 강사도 있고 심리상담사도 있어요.

기자: 말씀하신 젊음과, 완벽주의, K-POP을 위한 엄청난 노력. 이런 것들이 한국 문화의 특징인가요?

RM(방탄소년단): 서양 사람들은 이해 못 합니다. 한국은 침략당하고, 파괴되었고, 둘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우린 IMF와 UN의 원조를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죠.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건 바로 우리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혹독하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 세기 동안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했던 나라의 사람이 저를 보고 "세상에,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압박해요,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 스트레스가 많네요!"라고 하죠. 그래요. 우린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왔거든요. 그리고 이 방식이 K-POP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겠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요.


기자: K-POP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일까요?


RM(방탄소년단): 조립식이라는 점이겠죠.


기자: 만약 다른 나라나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요?


RM(방탄소년단): 전 종종 멀티버스에 대해 생각해요.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의 교훈은 항상 같죠. ‘너의 우주가 최고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라는 거요. BTS의 멤버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기자: ‘K-’ 로 명명되는 꼬리표가 지겨운 건 없나요?


RM(방탄소년단):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우릴 K-pop이라고 하는 것이 지겨울 순 있지만 효과가 있어요. 프리미엄 마크라고 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싸워 일궈낸 우리의 퀄리티에 대한 일종의 인증마크예요.


기자: 수많은 팬덤이 따르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진 않나요?


RM(방탄소년단): 자신에게 적용되는 기준에 의해 인정받고, 그 무게를 지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죠. 그래서 “아, 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하고 불평할 게 아니라 성숙해져야 하고 무게감을 느껴야 합니다. 자, 만약 인기가 돌덩이(짐)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그냥 단지 돌덩이일 뿐이에요. 하지만 제게는 제가 바라던 걸 얻게 해줬어요. 바로 인기 차트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경제적 자유와 영향력을 얻게 해준 거죠. 그래서 전 거기에 100% 비중을 두진 않고 외부가 아닌 제 안의 소리에 집중하려고 해요.


기자: 이제 서른 살이 되는데 어떠세요?


RM(방탄소년단):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은 처음이었어요. 10년 동안 BTS의 리더였는데 굉장히 안정적이고 재밌고, 항상 올라가고 있었죠. 2023년에는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스무 살 때보다 저는 서른 살이 되는 것이 좋아요. 이제 전 1년 반 동안 군대 생활을 할 예정입니다. 모든 한국 남성들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그 후에 전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더 지혜롭고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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