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회귀선>과 만난 건 국민학생 때였나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꽤 문제적이다. 애가 만나선 안 될 물건을 만났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눈에 띈 건 어쩔 수 없다. 영화 <북회귀선>은 포스터만으로 일찍이 소년에게는 없던 어떤 리비도를 일깨우고 말았다. 이를테면 저 가터벨트와 허벅지. 그러니 내가 오덕질을 시작한 이래로 스타킹과 치마 사이의 공간을 보여주는 - 속칭 '절대영역'이라 불리는 -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시작점은 <북회귀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 가터벨트도 내게 꽤 오랜 모에 포인트였는데 그 시작점이 된 작품도 <북회귀선>이다.
하여간 너무 일렀다. 나이 먹은 이제 와서는 다 심드렁하지만… 한 시기의 리비도를 일깨운 무시무시한 작품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한데, 사실 이 작품은 소설판 표지도 굉장하다. 내가 본 건 헨리 밀러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본.
소년에게는 이것만으로도 꽤나 자극이 크긴 했지만, 관건은 나신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이 그림은 아우라라는 말도 모르던 그 시기에, 분위기와 눈빛이 어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심지어 전라가 아닌 장면임에도 이렇게나 색정적일 수 있다니.
그렇게 리비도적 충격을 안고 살아 온 지 어언 수십 년. 시간이 흘러.
한참을 잊고 있던 <북회귀선>이 내게 왔다.
아는 분이 느닷없이 돌아가셨고, 그 분 집에 빼곡히 꽂혀 있던 책들을 정리해주기 위해 그 분을 아는 오랜 지인들이 함께 모여 앉은 그 날. 남편분이 반드시 남겨야 할 책들을 빼고 남은 책들을 버리기 전에 각자 챙기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일러스트가 박힌 <북회귀선> 판본.
뭐라고 할까. 돌아가신 누님을 처음 만났던 때는 이미 소년 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참 여러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해 주셨던 분이었는데. 마치 장난스럽게 "야 이거 너 어렸을 적에 보고 설렜던 그거라며?"라며 낄낄거리며 툭 던져주신 기분이 들었다. 40대도 이제 중반에 들어선 지금에 와선 나신 좀 본다고 가슴이 뛰거나 할 건 아닌데.
그냥 눈에 들어왔다.
어느 한 시기의 충격과도 같았던 그 그림이.
영화판 포스터까지 동시에 떠오르면서 말이지.
그렇게 잊고 있던 작품이 내 눈 앞에 다시 왔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신기하게도.
"이것이 소설인가, 하고 말한 비평가가 있지만 확실히 이 <북회귀선>은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판타지 이야기인지 약간 분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현실의 체험이 중요시되고 있고, 아주 소설적인 서술이 나오는가 하면 작자 자신의 생경한 감상이나 사상이 거리낌 없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미는 식이며, 문학의 장르에 관한 고전적 약속 같은 것이 실로 무관심하게 깨트려지고 있다. 성 묘사의 대담성은 그의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며,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의 작품에 성적인 사항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사상 내지 주장에 있어 그것이 본질적인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D. H.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그가 단순한 호색작가가 아님은, 다소나마 진실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내 알 수 있는 일이다"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