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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Apr 10. 2019

봄 작가의 첫 책 #3

편집자와의 대화

1. 어떤 책을 만들고 싶어요?


친구 같은 책이요. 출근길이나 자기 전에 같이 놀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두껍고 어려운 책은 시간을 내서 책상 앞에 앉아야 할 것 같잖아요. 읽기를 미루게 되더라고요. 가까이 두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10분, 20분씩 쪼개서 읽어도 쉽게 읽히는 책, 좋지 않나요? 인생의 엄청난 비밀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보다는 나은 글이기를 바라요. 한 문장이라도 독자의 기억에 남는다면 너무 좋고요.


2. 책의 크기는 어땠으면 좋겠어요?


가방에 쏙 들어가는 크기요.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부담 없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크기가 좋아요. 언제 어디서 지루한 시간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3. 책의 표지에 일러스트를 넣고 싶어요?


아니요.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캐릭터가 떠오르지 않아요. 그렇다고 결혼 사진을 넣을 순 없고요. 요즘 책들은 캐릭터가 들어가고 강렬한 색감이 많은데, 저는 반대로 얌전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제목이 긴 편이라 텍스트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싶어요.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

-한 여자의 단기 속성 결혼 성공기-


다시 읽어봐도 제목치고는 좀 길지 않나요? 여기에 일러스트까지 들어가면 산만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얘기를 워낙 솔직하게 써서 그런지, 표지에서는 내숭을 떨고 싶어요. 표지가 지나치게 발랄하면 쑥스러울 거 같아요. 40~50대 남성 독자가 지하철에서 제 책을 꺼내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4년이 지난 후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 점잖은 감성이랄까요? ‘차분한 표지 뒤에 숨겨진 발칙한 글’이 제 책의 컨셉이에요.


4. 책의 뒤 표지에 넣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


브런치 독자들의 댓글에서 영감을 받아서 홍보 문구를 몇 개 써봤어요.


’어쩌다 보니 결혼 장려 에세이가 되어버린 콧물 나게 솔직한 30대의 연애 이야기’

제 글을 보고 연애와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는 댓글을 보면 뿌듯했어요. 지루한 인생,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속 터지는 연애 고자와 노련한 연애 고수의 현미밥 같은 사랑’

‘그는 연애 고자일까, 연애 고수일까? 우리는 2주 뒤에 만날 수 있을까?'라는 2장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어요. ‘현미밥'이라는 표현은 그와의 첫 키스 장면에서 따왔고요.


’엄마가 딸에게 추천해주고 남편이 아내와 함께 보는 담백한 로맨스’

'딸에게 추천했어요'라는 댓글이 달리고 얼마 후에 '엄마가 추천해줘서 읽었는데 너무 재밌네요.'라는 딸의 글을 봤어요. 모녀가 드라마를 함께 보면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잖아요. 제 글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남편이 링크를 공유해줘서 정주행 중입니다'라는 아내의 댓글도 감동이었습니다.


5. 프롤로그에 남편의 편지를 넣었던데, 배경이 있나요?


글 초반에 남편이 고구마 같았어요. 그래서 여성 독자들이 답답해하더라고요. '이쯤 되면 남편분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네요, 남편분은 그때 왜 그러셨대요?' 같은 질문이 많았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했어요. 평소 글을 거의 쓰지 않는 남편에게는 힘든 일이었죠. 편지지와 볼펜을 쥐어 주고 방에 가뒀습니다. 한 시간 뒤에 방에서 나오더라고요.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이 남자, 재미는 없지만 진심이 있어요. 저를 묘하게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6. 목차의 제목을 좀 더 구체적이고 콕 찌르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남편이 보내는 편지'는 '사랑을 아는 모든 분들께 / 이 책의 첫 독자로서 / 누구나 결혼할 수 있어요' 등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봄 작가 통신 / 세상의 모든 새댁에게 / 대한민국 (예비) 며느리에게!' 등으로요.


'백일 선물 그리고 자취방'은 자취방만 남길까요? 자취방이 너무 재미있고 비중이 높아서요. 자취방을 좀 더 재미있게 표현하는 제목도 좋고요.


'하늘에서 떨어진 집'은 조금 더 재미있고 생동감 있는 표현 없을까요? 음... 신혼집이 벌써? / 속도위반 신혼집 계약?


'프리 허니문이 된 유럽 여행', 이 제목도 좋아요! 혹시 앞의 제목과 결이 맞아서 더 좋아진다면, 결혼식 없이 신혼여행? 신혼여행도 속도위반으로! 같은 거 어때요?


'반대에 부딪힌 결혼'은 '결혼을 반대하는 한 남자 또는 그, 사람'이 어때요? 구체적이면 더 흥미가 당기잖아요.


'나의 이사 그리고 혼수'에서 '나의 이사'가 좀 약하네요. 10년 치 혼수를 옮기던 날?


'싱가포르 출장 동행기'는 두 번째 속도위반, 신혼여행 같은 출장 동행 어때요? 싱가포르가 꼭 필요하진 않은 거 같아요.


'수능보다 빡센 결혼 준비'는 단기 속성 결혼 준비 / 플래너 없는 단기 속성 결혼 준비 / 원샷 원킬 결혼 준비 어때요?


'결혼식, 인생 1막을 정리하는 날'에서 '인생 1막을 정리하는 날'이 의미는 있는데, 재미 요소는  떨어지는 거 같아요. 본문에서도 두 번 정도 나오는 문장이고요. 하지만 의미가 있어야 할 때는 있어야 하니까, 작가 의견대로!


저는 제목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님 의견을 듣고 나니까 너무 평범해 보이네요. 좀 더 개성 있고 통통 튀는 표현으로 고민해서 수정해볼게요. 인터넷 서점에서는 목차가 중요한 요소니까요.


고민 끝에 최종 목차는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인공 지능 남편의 아날로그 편지


1부: 연애


2대에 걸친 소개팅

연애의 조건

오늘부터 우리는

지금 키스하러 갑니다

서핑하러 가자는 그 말

오케이, 여기까지

그를 잊을 수 있다면


2부: 결혼


세미 상견례

자취방 침투 작전

신혼집이 딱!

결혼보다 허니문 먼저

예비 시댁에서의 합방

삼자대면

양가의 합숙 훈련

시월드의 체험판, 상견례

21년 만의 방 탈출

같이 삽시다

허니문만 두 번째

결혼 발표, 웰컴 투 유부 월드

여배우 겸 감독이 되다

어설픈 프러포즈와 와이셔츠 총상의 진실

마지막 부케


3부: 결혼, 그 후


두 번의 예고편에 이은 리얼 허니문

시댁 투어

현실 부부가 되다


에필로그: 작가가 된 새댁




2019년 4월 10일 수요일, 책 감리가 끝나고 인쇄에 들어갔습니다.


4월 15일, 월요일에 1쇄 제작이 완료될 예정이에요.


빠르면 4월 17일 수요일부터 전국 주요 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될 것 같아요. 서점별로 하루이틀 차이가 있을 거라고 하네요.


자세한 소식은 다음 주에 다시 전해드릴게요!



        <파주 출판단지에서 1쇄(2천 부) 인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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