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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Apr 09. 2019

봄 작가의 첫 책 #2

글 감옥에 갇히다

2010년에 KBS의 '우리말 겨루기'에 나갔다.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였다. 달인 상금이 3천만 원이다. 달인이 되면 일하지 않고도 1년 정도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돈이 탐나기도 하고, 회사 생활이 지루해서 도전했다. 내가 어느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번역업계 7년 차였다. 영어를 한글로 번역한 문서에 대해 거의 매일 맞춤법 검사를 했다. 국어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다. 한 번의 응시로 운 좋게 최종 단계까지 합격했다. 두 달 뒤에 녹화를 했고, 최후의 1인이 되었다. 달인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우승자 타이틀은 꽤 오래갔다. 그 뒤로 나는 내가 국어를 잘하는 줄 알고 살았다.


'서른여덟, 6개월 만에 결혼하다'의 초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했다. 우리말 배움터의 '한국어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했다. 글을 쓰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맞춤법 검사는 지루한 작업이다. 한 페이지만 검사해도 오류가 의심되는 구문이 줄줄이 나온다. 생각보다 많다. 사이시옷은 너무 어렵고, 띄어쓰기의 세계는 알수록 오묘하다. 어떤 건 붙여 쓰고, 어떤 건 띄어 써야 하는데 그 이유가 다양하다. 외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글이 아니라 글자에 집중하며 맞춤법 검사를 끝냈다. 내가 쓴 120페이지를 돌아보며 내 국어 실력이 얼마나 비루한지 알게 되었다.


그 뒤로도 편집자와 퇴고를 거듭하며 새로운 지적을 받았다. '아울렛'은 '아웃렛'이 맞고, '삐지다'는 '삐치다'가 맞다. '술집을 간다'가 아니라 '술집에 간다'가 맞다. 국어가 이렇게 어렵고 까다로웠나 싶다. ‘대한외국인'에 출연하는 외국인들이 존경스럽다. 퇴고를 하면서 국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졌다. 마지막 원고를 넘길 때까지 눈에 불을 켜고 실수를 찾았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실수가 남아있을 것이다. 부디 제목에서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40일 동안 편집자와 열 번에 걸쳐 퇴고했다. 두 번은 인쇄된 원고를 퀵 서비스로 받았고, 나머지는 이메일로 주고받았다. 미팅은 계약서 쓸 때를 포함해서 다섯 번 했다.


편집자와 나의 목표는 같다.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다. 책갈피를 꽂아둔 채 읽기를 멈춘 책들이 열 권이 넘는다.


4월 말까지 책 작업을 끝내는 것이 목표지만, 둘 다 만족하지 못하면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지만, 세상으로 나온 책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책이 인쇄되기 전까지 한 번이라도 더 읽고 고쳐야 한다.


편집자는 매번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처음에는 친절했지만, 뒤로 갈수록 집요했다. 독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미묘한 표현을 두고 열띤 토론을 했다. 예를 들면 "비가 온다"보다 "비가 내린다"라는 표현이 더욱 낭만적이지 않겠냐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꼼꼼하다. 종종 짜증이 났다. 심하게 짜증이 날 때면 마음속으로 편집자에게 반항했다.


'미혼 남성이 결혼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연애 편이 재밌고 결혼 편은 재미없다고 하는데, 나는 결혼 편이 더 재미있거든요? 두 번째 책을 내게 된다면 여성 편집자와 하고 싶군요.'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면 편집자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미혼 남성이기 때문에 내 글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시각을 가졌다. 편집자가 아니라면 나에게 이렇게 쓴소리를 해 줄 사람이 없다. (아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한 명 더 있었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수정해서 원고를 보내면 하루가 안 돼서 돌아왔다. 편집자에게 다른 바쁜 일은 없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 부지런한지 한숨이 나왔다. 하루만 원고 생각을 안 하고 싶었다. 원고가 내 손에 없는 날은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원고가 주말에 오면 외출을 포기했다. 퇴고 기간에는 현실 남편보다 글 속의 남자 주인공이 우선이었다.


퇴고는 잊지 못할 작업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가도 다시 보면 아차 싶었다. 지난번에는 매끄러웠던 부분이 다시 읽으면 과속방지턱처럼 덜컹 걸렸다. 같은 원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볼 때마다 다르게 읽혔다. 끈기와 인내심으로 원고를 살폈다. 마지막 퇴고를 할 때 폭풍 수정을 했다. 아직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마지막 수정사항을 반영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원고를 보냈다.


386 프로젝트(38살, 6개월 만에 결혼하다)를 진행하면서 의미 있게 살펴봤던 것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1. 반복되는 표현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타인의 눈에는 잘 보이는 부분이 있다. 편집자는 내가 반복해서 쓰는 단어들을 골라주었다.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2. 단정적인 표현


나도 모르게 '연애는 이래야 한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에세이지만, 작가의 세계관을 표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를 독자가 '정답’이라고 느낀다면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연애학 개론' 교수가 아니다. 편집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표현을 좀 더 부드럽게 다듬었다.


3. TMI(Too Much Information) 줄이기


내 글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그러다 보니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썼다. 정확한 날짜나 시간을 언급해야 그때의 상황이 떠올라서 글의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자는 주인공이 날짜별로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다. 유럽 여행을 기록할 때 '9월 9일, 9월 10일' 등의 날짜를 언급한 부분을 '여행 첫째 날, 여행 둘째 날'과 같이 고쳤다. 내용에 집중이 더 잘 되는 느낌이다.


4. 선입견 없애기


선입견이 들어간 표현을 수정했다. 이를 테면 '그는 충청도 사람이라 느긋하고, 시아버지는 전라도 분이라 성격이 급하다' 등의 지역색에 대한 편견을 없앴다. 다음으로는 '돌싱도 좋고, 고졸도 좋으니 누구라도 소개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학력에 대한 언급을 수정했다.


5. 비 타깃층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내 글의 타겟층은 20~30대의 여성이다. 바꿔 말하면 30대의 미혼 남성이나 40~50대의 기혼 남성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다. 하지만 댓글을 보면 의외로 남성 독자가 많다. 혹시 내 글이 한쪽으로 치우친 글은 아닌가 생각하며 남자의 시각으로 읽었다. 그러자 마음에 걸리는 몇몇 표현들이 있었다. 균형 잡힌 표현으로 수정했다.


6. 안티 팬의 등장


편집자와 원고를 다섯 번쯤 주고받으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였다. 더 이상 고치고 싶은 부분이 없고, 내 원고를 다시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글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내 글에 대한 비평 글이었다. 상당히 길었던 그 글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글쓴이는 30대 후반의 미혼 남성이고, 내 글을 열 편 이상 읽은 사람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따지는 것 같아 읽기 불편하다고 했다.


어느 부분이 독자의 마음에 걸렸을까 생각하며, 내 글을 꼭꼭 씹으며 정독했다. 구체적인 액수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언급을 무난한 표현으로 바꿨다. 혹시라도 오해를 살 만한 표현이 없는지 한 문장 한 문장을 살폈다. 바짝 긴장을 하니 수정하고 싶은 문장을 몇 개 더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비평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장문의 글로 공격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며칠간 괴로웠다. 하지만 내 글을 누가 읽게 될지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곧 깨달았다. 독자는 작가를 선택할 수 있지만, 작가는 독자를 선택할 수 없다.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벚꽃 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봄이 좋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책이 인쇄되기 전에 그 글을 접하게 되어 다행이다. 결과적으로 그 글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7. 독자의 시각으로 낯설게 보기


내 글을 처음 읽는 독자의 마음으로 정독을 했다. '주선자인 순희 고모는 어렸을 때 한동네에 살았다.'라는 문장을 '주선자인 순희 고모는 어렸을 때 한동네에 살았던 이웃이다.'로 수정했다. 순희 고모는 나의 친 고모가 아니라 남편의 고모다. 뒷 글의 흐름상 처음부터 '고모'라고 표현한 것이지만, 설명이 부족하다. 그 밖에도 앞뒤 문장의 순서를 바꾸거나 단락 전체를 수정하기도 했다. 잘 읽히는 글은 결코 쉽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이제 책의 표지와 판형, 목차,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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