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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r 30. 2019

봄 작가의 첫 책 #1

탈고, 너란 놈

2019년 1월. 브런치에 네 편의 글을 포스팅하고 첫 번째 출간 제안을 받는다. 너무 빨리 찾아온 기회에 얼떨떨하다. 내 글이 책이 된다고? 나의 가능성을 알아본 눈 밝은 편집자에게 감사하다. 당장이라도 계약하고 싶다. 하지만 겁이 난다. 크게 두 가지 고민이 생긴다.


첫 번째는 분량에 대한 고민이다. 한 꼭지당 A4 용지 4장 정도니까 아직 16페이지밖에 안 된다. 책 한 권이 나오려면 적어도 100페이지는 넘겨야 한다. 80% 이상을 더 써야 한다는 뜻이다. 열흘 만에 네 편의 글을 썼지만, 남은 글이 어디에서 막힐지 모른다. 창작 속도는 일정하지 않으므로 완결까지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두 번째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다. 일반 독자가 아니라 전문 편집자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긴장된다. 의식의 흐름대로 편하게 쓰고 싶은데, 편집자의 시선에서 검열하게 될 것 같다. 내 색깔을 잃을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음날 답장을 보낸다.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내 글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떨린다. 하루빨리 내 책을 만져보고 싶다. 마음이 바빠진다. 머릿속에 단어가 떠다닌다. 둥둥 떠다니는 낱말들을 낚아채서 받아 적는다. 언제 글발이 떨어질지 몰라 초조하다. 갑자기 글 쓰는 게 재미없어질까 봐 무섭다. 자려고 누워도 잠이 안 온다. 12시에 자면 새벽 4시에 눈이 떠진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글을 쓴다.


처음에는 워드 파일로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을 열어야만 글을 쓸 수 있었다.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 앱으로 썼다. ‘작가의 서랍’에 단어들을 모아 두고 틈틈이 써 내려간다. 지하철에서 20분, 자기 전에 10분, 심심할 때 10분. 자투리 시간을 모으니 하루에 한 시간이 넘는다. 문장은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된다. 동전이 모여 만 원짜리 지폐가 되는 것처럼 쏠쏠하다.


설 연휴 기간은 절호의 찬스였다. 설 전날과 당일을 빼고 4일간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댁에 내려가는 기차에서도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 연휴 동안 1일 1 글을 올렸다. 한 번 속도가 붙으니까 멈출 수가 없다. 글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이 나의 연료가 된다. 한 편을 올리면 독자들이 다음 편을 재촉한다. 나는 설국열차처럼 달렸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싱가포르 출장을 갔다. 이번에는 비행기 안에서 썼다. 지루한 비행시간이 금방 간다. 싱가포르 출장 기간에 좋은 일이 생긴다. 카카오톡 브런치 구독자에게 내 글이 전송되었다. 하루 만에 조회 수가 12만까지 올라가고, 구독자 수가 천 명이 늘었다. 댓글이 계속 달린다. 악플이 달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수시로 확인한다. 속상한 댓글은 두세 개 정도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속도를 낸다. 곳간의 쌀포대처럼 글이 차곡차곡 쌓인다. 통장 잔고가 늘어가는 것처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스무 편을 쓰는 데 40일이 걸렸다. 이틀에 한 편 꼴이다. 다시는 이런 속도로 쓰지 못할 것 같다.


글을 쓴 지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가 60만이 되었다. 출판사 몇 군데에서 연락을 더 받는다. 행복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정한다. 2019년 2월, 출간 계약을 했다. 28항에 이르는 계약 조건을 검토하고 도장을 찍는다. 간인을 하고 한 부씩 나눠갖는다. 책이 출간될 날이 머지않았다.


계약서 작성이 끝나자 편집장이 가방에서 인쇄본을 꺼낸다. 원고에 빨간펜의 흔적이 보인다. 가슴이 찌릿하다. 누군가 내 원고에 손을 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담임 선생님 앞의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우선 1, 2편만 리뷰해봤어요.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니까 반영하는 건 작가님이 결정하세요. 이건 작가님 작품이니까요.”


게시글의 새 댓글을 읽는 것만큼 두근거린다. 전체적으로 “했다” 등의 과거형 동사를 “하다” 등의 현재형으로 바꾸라는 의견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 과거형으로 썼는데, 독자의 몰입에는 방해가 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편집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음은 주어와 동사의 호응이다. 레스토랑에서는 “주문하다”가, 횟집에서는 “시키다”가 어울린다. 이야기의 전개에 집중하느라 생각 못 한 부분이다. 디테일하다.


그 밖에도 내가 무심코 쓰는 표현을 찾았다. 조사 “도”를 자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가” 또는 “은/는”으로 바꾼다. 편집자의 빨간펜을 따라가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때가 낀 손톱으로 악수하는 기분이다. 등 뒤로 원고를 감추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수정하고 싶지만, 글을 완성하는 게 먼저다. 완주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편집자에게 원고를 보낸다. 전송 버튼을 클릭하는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속이 시원하다.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창작이 어렵지, 수정은 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 편집자가 나의 팬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한 착각이다. 초고를 손에 넣은 편집자는 까탈스러운 독자가 됐다. 안티 팬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깐깐하다. 진짜 글쓰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쓴 원고에 한 달간 갇혀 지냈다. 이런 게 글 감옥인가 싶다. 내 글을 이틀 단위로 정독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첫 키스만 50번째’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똑같은 원고가 놓여 있다.


“퇴고는 토할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했던 김연수 작가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탈고보다 퇴고가 힘들다는 진리에 한 발짝 다가선다.


퇴고 작업에 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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